곳곳마다 ‘살아 있는 생태박물관’이라 부를 만큼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영월은 언제 가도 즐겁다.
아름다운 물줄기를 따라 래프팅을 즐기던 여름이 지나고 싸한 바람이 스칠 즈음 영월에 가면 차분하게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체험들이 기다리고 있다.
○ 들꽃의 소박한 아름다움
영월군 주천면에 있는 비산체험학교에서 가을 들꽃을 이용해 꽃누르미를 해보면 어떨까. 폐교를 활용해 만든 곳이라 들어서는 순간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다.
숲 해설가인 김은선씨 부부가 3년 전 만든 이 학교에서는 주변에 피어나는 갖가지 들꽃을 따서 말려 두었다가 목걸이 액자 보석함 스탠드 엽서 등 못 만드는 것이 없다.
또 흙냄새가 묻어나는 교정에 살아 숨 쉬는 나무, 풀, 곤충, 새 등에 대한 숲 해설도 펼쳐진다. 이처럼 아주 작은 것들에 마음을 주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교실 안에 들어서면 꽃누르미 작품들이 벽면에 가득 차 있다. 저마다 색깔 고운 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들은 미세한 입체감이 살아있다. 소박한 들꽃이 액자에 담겨 있으니 마치 한 폭의 은은한 동양 자수 같다. 이곳은 모든 것에 꽃이 있다. 검정고무신에도 앙증맞은 꽃이 붙어 꽃신으로 변했고 들꽃이 들어 있는 양초에 불을 붙이면 꽃향기가 솔솔 피어날 것만 같다.
이즈음 쉽게 볼 수 있는 꽃은 푸른빛이 감도는 쑥부쟁이, 청보랏빛의 벌개미취, 뽀얀 우윳빛이 나는 물매화 등이다. 이중 손톱만한 크기의 꽃이 한 줄기에 하나만 피는 물매화 꽃잎에는 화장을 한 듯, 제 빛이 아닌 발그스름한 색깔이 배어난다. 꽃잎 위에 어쩌면 저리도 섬세하게 물감을 칠했을까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꽃을 딴 직후 물감을 푼 물에 담가두면 줄기를 타고 잎으로 곱게 스며든 것이다.
○ 가을에 쓰는 꽃 엽서
작은 꽃잎으로 목걸이나 열쇠고리 등을 만든다. 사기나 나무로 된 작은 틀에 말린 들꽃을 얹은 후 액체 접착제를 발라 말리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
목걸이는 단순하지만 액자는 나름대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먼저 부직포 위에 그림을 그리듯 꽃잎과 줄기 등을 원하는 모양으로 배열한다. 마른 꽃잎을 손으로 덥석 집는 것은 금물. 부서지기 쉬우므로 핀셋을 사용한다. 재채기도 주의해야 한다. 꽃잎이 너무 가벼워 완성된 모양이 재채기 한 번에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모양이 완성되면 진공처리 효과를 내는 특수용지를 붙여 액자틀에 넣으면 된다. 이때 공기구멍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변색되어 제 색깔을 내지 못한다.
가족단위라면 합심하여 벽에 거는 액자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또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라는 노래도 있듯 꽃 엽서를 만들어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띄워보자.
이곳에서는 들국화를 따서 국화차를 만들 수도 있다. 상큼한 가을바람이 스미는 들녘을 누비며 꽃을 따서 차에 가을 향기를 듬뿍 담아본다. 따온 꽃을 소금물에 데친 후 그늘에 말리면 국화차 완성. 지름 2mm 정도의 작은 국화꽃 알갱이 6∼7개면 한 잔은 충분히 우려낼 수 있다. 보통 종이컵으로 한가득 정도는 만들어갈 수 있다.
저녁에는 넓은 운동장에 모여 가족대항 달리기 시합도 하고 모닥불을 피워놓은 운동장에 누워 별이 총총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맛도 그만이다.
○ 책과 자연이 함께 있는 곳
근처에 있는 폐교 신천초등학교 여촌분교에 세워진 영월책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주천면에서 차로 25분 거리. 영국의 유명한 책마을 ‘헤이 온 와이’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책이 어우러진, ‘책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 박대헌씨가 사비를 털어 만든 국내 첫 책 박물관이다.
출입문도 없이 양 옆으로 기둥만 덜렁 서 있는 박물관을 들어서면 그 옛날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에 키 작은 풀들이 가득 깔려 있다. 매끈한 잔디밭과 달리 제 멋대로 피어있는 풀들이 오히려 푸근함을 안겨준다.
이끼가 잔뜩 낀 돌계단 위에 있는 전시관은 3칸으로 이어진 교실이 전부. 하지만 그 안에는 지금은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60∼70년 전 초등학교 교과서를 비롯해 1925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서적, 한국문학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책 등 수만권이 빛바랜 모습으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장소는 아담하지만 천천히 책을 음미하다 보면 가슴 찡한 감흥이 전해온다. 해마다 교실 하나씩 주제를 달리해 전시물을 바꾸기 때문에 매년 들러도 새로운 책을 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무명작가가 쓴 ‘송광용 만화일기 40년’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 중학교 1학년 때 만화일기를 쓰기 시작해 1992년 2월까지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썼다고 한다. 한 평범한 남자의 꿈과 현실, 희망과 좌절이 그대로 담겨있어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개인의 삶을 고스란히 엿보는 듯하다.
5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했던 철수와 영이를 다시 만날 수도 있다. 오랫동안 천진난만한 얼굴로 정겨움을 주었던 두 꼬마의 모습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건만 정작 그 그림을 그린 김태형씨(1993년 77세로 작고)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다음달 31일까지 이곳에 오면 ‘철수와 영이전’을 통해 김태형의 세계를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글=최미선 여행플래너 tigerlion007@hanmail.net
사진=신석교 프리랜서 사진작가 rainstorm4953@hanmail.net
▼1박 2일 떠나볼까▼
1. 영월군 주천면 도착→비산체험학교(033-374-1251) 둘러보기→꽃누르미 작품 만들기(목걸이 4000원, 엽서 3000원, 액자 크기에 따라 2만∼8만원)
2. 시골학교 운동장에서 추억의 놀이 즐기기→숙박
3. 이른 아침 들꽃 따러 나서기→꽃 말려서 국화차 만들기→영월책박물관(033-372-1713) 둘러보기(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귀가
4. 비산체험학교 1박2일 주말 프로그램(꽃누르미 작품 만들기, 국화차 만들기, 숙박, 3식에 1인당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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