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도 언감생심인 도시의 직장인. 그런 이에게 월요일 아침 포구의 여유로움을 소개함이, 글쎄, 약만 올리는 정서적 폭력은 또 아닐지. 그러나 기회만 된다면 한번 시도해 볼만하다. 귀한 시간을 오가는 길에 허비하고 휴식이니 재충전이니 하는 애초의 바람은 강탈당한 채 피로와 짜증만 쌓이는 주말여행에 지친 이라면.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 비록 한낮의 기온은 여름을 방불케 하지만. 변산반도를 뒤로 하고 서해 위도를 향해 나아가는 카페리의 3층 갑판. 바다 오른편에 줄지어 선 섬들의 행진이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또렷이 펼쳐진다.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새만금 방조제가 있는 군산 앞바다의 고군산 열도다.
50분의 짧은 항해. 배는 위도의 파장금에 닿았다. 섬에 한 대뿐인 공영버스가 보인다. 버스는 섬 내 일주도로를 운행한다. 반도의 허다한 섬 가운데 일주도로를 갖춘 섬은 헤아릴 정도다. 위도가 거기 든 데는 아픈 사연이 있다. 10년 전(1993년) 이 뱃길에 침몰해 292명이 사망 실종된 서해 페리호 참사다. 이 도로는 실의에 빠진 주민을 위한 것이었다.
피서객이 빠져나간 섬은 한산한 일상을 되찾았다. 물 나간 개펄은 기우뚱 댕그라니 얹힌 고깃배 차지. 게서 조개 캐는 아낙의 손놀림이 재빠르다. 물길 난 갯골은 저녁상에 올릴 고기 낚는 촌부 차지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문제로 시끄럽던 당시의 소란이 옛일처럼 느껴질 만큼 평화롭다.
버스로 섬 일주(26km)에 나섰다. 요금은 2000원, 소요시간은 45분. 2차로 아스팔트 도로가 섬 외곽을 두른다. 마을도 지나지만 대부분은 해변과 산중턱의 해안가다. 게서 보니 섬은 바다에 풍덩 빠진 숲 울창한 바위산의 모습인데 그 풍경이 가없다. 전남 영광의 백수해안도로 풍광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거기에 낙조까지 거들면. 더 이상 말이 필요할까.
섬마을은 이름마다 ‘금(金)’자가 들었다. 파장금 벌금 논금 미영금 정금 깊은금…. ‘위도 12금’이라는 금자 든 열두 마을은 죄다 포구다. 연유를 묻지만 아는 이가 없다. 흘러 다니는 말로는 돈(金) 들어올 만한 곳에 붙인 것이라는데 그런 선견지명은 근방의 칠산 앞바다가 조기잡이배로 넘쳐나던 지난 세기에 찬사를 받았다. 위도에 파시가 서면서 마을마다 돈벌이가 좋았단다.
이즈음에 위도를 찾는 이라면 귀기울여야 할 것이 있다. ‘흰 상사화’라는 보기 드문 들꽃이다. 이즈음 고창 선운사 경내 숲 속을 온통 뒤덮는 빨간 상사화와 달리 꽃이 흰 이 들꽃은 ‘위도상사화’라고도 불리는데 8월 중순부터 섬에 피기 시작해 한 달쯤간다.
그 꽃을 ‘들꽃박사’ 김태정 소장(한국야생화연구소)이 놓칠 리 없다. 그는 이날 한국야생화연구회 회원과 함께 위도행 카페리에 올랐다. ‘상사화’라는 특이한 이름은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해서 붙여진 것. 잎이 지면 휴면기를 보낸 후 덩그러니 꽃대만 세워 홀로 꽃을 피운다.
진리 마을의 팽나무 근처에서 가가호호 물어물어 찾은 그 꽃. 일주도로변 언덕에 드문드문 피어 있다. 지난밤 폭우에 꽃대 꺾이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꽃은 건재했다. 50cm의 매끈한 꽃대 위에 서너 송이씩 핀 흰 꽃은 파란 하늘 아래 갈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일주 도중 논금의 해변에 들렀다. 사방에 조선 수군의 깃발이 펄럭인다. 곧 방영될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촬영 세트장이다. 그런데 어째 해변 풍경이 낯설지 않다. 팻말을 보니 영화 ‘해안선’의 촬영지라 씌어 있다. 삼도수군통제사(이순신)의 지휘소로 지어진 한옥(세트)은 촬영 없는 날에 민박집으로 활용된다. 장군이 난중일기를 쓰던 방에서 하룻밤. 비록 세트라 해도 예쁜 해변이 조망되는 멋진 한옥이니 색다른 추억이 되지 않을까.
○ 여행정보
◇찾아가기 ▽위도=격포항에서 카페리 승선. 14.5km, 50분 소요. 승용차(운전자 포함) 2만4000원, 승객 6700원(이상 편도). 계림해운㈜ 063-581-1997. 출항시간은 조수간만의 차로 유동적. ▽격포=서해안고속도로∼부안 나들목(줄포 나들목)∼30번국도.
◇문의 △면사무소 063-583-3804 △논금 촬영세트장 모래찜질, 낚시, 민박 가능. △위도우승관광레저(백운기) 063-583-3875 △부안군 www.buan.go.kr △위도닷컴 www.wido.com
○ 맛 집
격포항은 변산반도의 백미인 채석강을 낀 포구. 변산 특미라면 백합(조개)으로 국물 내고 풋고추로 맛을 내 바다향취 폴폴 나는 시원한 백합탕(3만원)이다. 격포항 봉래횟집(063-584-4340)은 수족관에 있는 펄펄 산 백합만 쓴다.
백합 주산지는 변산반도 북단의 계화도(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됨) 갯벌. 옛 섬마을(계화리)의 현대수산횟집(063-583-1895)은 자연산 회를 푸짐하게 주는 저렴한 식당으로 한 상에 3만원. 주인 김철수씨가 직접 신시도 앞바다에서 잡아온다. 전어 나는 이즈음에는 전어회를 묵은 김치에 싸 참기름에 찍어 먹는 계화도식 전어 쌈이 별미다.
부안=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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