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河南)성의 성도인 鄭州(정저우)에 가면 지금도 상나라 초기 때 판축법으로 쌓은 10여m 높이의 성벽이 7km 이상 남아 있다. 흙을 다져 만들었는데도 무려 3500년 이상이나 원형을 보존해 온 것이다.
基에서 其는 터를 다지기 위해 흙을 담아 나르던 도구를 형상한 글자로 보인다. 원래 其는 갑골문에서 곡식을 까부는데 쓰이는 ‘키’의 모습을 그렸다. 갑골문에서는 其가 밭에 거름을 내거나 쓰레기를 버릴 때도 자주 사용되어 이후의 삼태기와 같은 기능도 함께 했다. 하지만 이후 其가 ‘그’라는 지시대명사로 가차되어 쓰이게 되자 다시 竹(대 죽)을 더한 箕로 원래의 의미를 나타냈다. 竹이 더해진 것은, 키는 예나 지금이나 대나무를 엮어서 만드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礎는 의미부인 石(돌 석)과 소리부인 楚로 구성되어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을 뜻한다. 楚는 고대 중국에서 남방문명의 상징이자 북방의 한나라와 마지막까지 대결했던 楚나라로 잘 알려진 글자이지만, 원래는 가시나무의 일종인 牡荊(모형)이라는 나무를 가리키는 글자였다. 갑골문에서부터 출현하는 楚는 나무가 중첩된 모습인 林(수풀 림)과 소리부인 疋로 구성되어 이것이 나무를 지칭함을 그렸다.
牡荊이라는 가시나무는 가시가 많아 그 자체로도 아픔이나 어려움의 상징이 되기에도 충분하지만 나무의 재질이 단단하여 곤장을 치는 매의 재료로 쓰기에 알맞았다. 그래서 楚에는 가시나무라는 원래 뜻 이외에도 刑杖(형장·죄인을 심문할 때 쓰던 몽둥이)의 뜻이, 다시 苦楚(고초)에서와 같이 아픔과 어려움의 의미가 생겼다. 그래서 礎를 구성하는 楚는 기둥 아래를 받치는 주춧돌의 의미로 기둥을 받치며 힘든 압력을 견뎌낸다는 뜻으로, 의미부의 역할도 겸한다.
따라서 基礎는 흙을 다져 터를 닦고(基) 돌로 주춧돌을 만드는(礎) 작업을 뜻한다. 그것은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충실하게 잘 다져지기만 한다면 저 상나라의 성벽처럼 수 천년의 세월이 지나더라도 튼튼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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