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이 고향인 이청준(소설가) 김영남(시인) 김선두씨(화가·중앙대 한국화과 교수)가 입을 모으는 고향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이 ‘글쟁이, 환쟁이들’이 함께 만든 책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학고재)를 보면 고향은 이들에게 무슨 거창한 사적지나 관광지라기보단 “별의별 사연을 다 나눈 나이든 애인과도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다.
“가세가 기울자 저는 고향에서 달아나듯이 떠나왔어요. 아픈 기억이 많이 남아 있지요. 하지만 장흥은 언제나 제 문학의 젖줄입니다. 김 시인, 김 화백과 함께 이 책을 만들기로 하고 처음으로 함께 고향에 가보니 수만 포기 자줏빛 할미꽃 군락이 한재 고개를 뒤덮고 있더군요. 우리는 한동안 넋을 잃었는데, 그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지….”(이청준)
김영남 시인은 “내가 가장 아끼는 시를 이번에 고향에 갔다가 쓰게 됐다”고 말했다. ‘푸른 밤의 여로-강진에서 마량까지’가 그것이다. 마지막 연은 이렇다.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이야. 이곳에 이르니 그리움이 죽고 달도 반쪽으로 죽는구나. 포구는 역시 슬픈 반달이야. 그러나 정말 둥근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거고 내 고향도 바로 여기 부근이야.’
김선두 화백은 영화 ‘취화선’에서 주인공 장승업 역을 맡았던 최민식 대역으로 장승업의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그는 ‘이송(二松)’이라는 호를 쓰는데 이 책에서 호의 뜻이 무엇인지 밝혀놓았다. “아버님은 할아버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가 되겠다며 저를 고향에 남겨둔 채 상경하셨지요. 가끔 귀향하셨다가 쓸쓸해져서 금세 올라가셨는데, 하루는 크레파스를 제게 선물로 주셨어요. 무슨 보물 같았던 그 크레파스를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해요. 화단의 텃세에 고독하셨을 아버님. 고향 마을에 서 있는 큰 소나무 두 그루를 보면 화가가 된 아버님과 저처럼 생각돼요.”
이들은 “남들이 ‘지역’을 말하기 꺼리는 지금 우리는 고향을 이야기하기로 했다”며 “이런 시도가 방방곡곡 예술인들에 의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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