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박 타치아나/한류열풍? 고려인은 잘 몰라요

  • 입력 2004년 9월 3일 18시 38분


아시아 전역에 한류(韓流) 열풍이 거세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에는 한류가 잠잠하다. 이곳에도 ‘조폭마누라’ 등 한국 영화가 종종 상영되고 한국 연예인들이 방문하기도 하지만 아직 열풍을 일으키기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미미한 편이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들은 줄잡아 10만여명. 주로 알마티 지역에 모여 산다. 한 국가에 거주하는 재외동포의 숫자로는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일본인도, 중국인도 열광하는데 왜 정작 한국인의 핏줄을 나눈 고려인들은 한국문화에 무관심한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에 고려인들을 위한 언론매체가 활성화되지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한국 연예문화 관련 소식들은 주로 신문 잡지 방송 등을 통해 홍보되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의 고려 언론은 80년이 넘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취급하는 뉴스도 한국 현지소식보다 카자흐스탄 또는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 소식에 더 비중을 둔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대상 TV방송인 ‘고려사람’은 일주일에 20분 전파를 탄다. 고려말 라디오 방송은 한달을 합쳐봐야 방송시간이 채 1시간도 안된다. 이 정도 방송시간에 한국 드라마를 내보내거나 한국문화 소식을 전해 줄 여유는 거의 없다. 대개 방송시간의 4분의 3은 러시아어, 나머지는 한국어로 방송된다.

주간신문 ‘고려일보’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고려일보 발행부수는 주당 1700부 정도. 안타깝게도 발행부수는 계속 줄고 있다. 게다가 원래 이 신문은 한글로만 제작됐으나 한국말을 아는 기자와 독자층이 줄어들면서 1991년부터 지면의 일부는 러시아어로 제작되고 있다. 한글면의 비중이 작아지면서 한국 소식은 당연히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금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들은 대개 한인 3, 4세로 한국문화를 많이 잊어버린 세대다. 한인 3세인 나의 부모님도 한국말이 매우 서투르다. 나 역시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면 다른 고려인 젊은이들처럼 한국말을 못했을 것이다. 한국문화를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사라지면서 고려인들을 위한 언론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기업들의 카자흐스탄 진출이 늘면서 고려 언론도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고려 언론의 한국 소식은 아직 한국과의 경제협력 소식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다양한 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고려 언론은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들에게 한국 소식을 전해 주는 ‘민족의 끈’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과의 교류가 더욱 확대되면 고려 언론에서 한류 열풍을 비롯한 좀 더 다양한 소식을 접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고려 언론과 한국 언론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으면 한다.

1979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현재 고려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7월부터 한국언론재단 초청 해외동포 언론인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해 한국에 머물고 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가 발행하는 고려일보는 주간 12면(러시아어 8면, 한글 4면)이다.

박 타치아나 카자흐스탄 고려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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