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기업이윤을 최우선시하는 ‘주주 자본주의’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로 분화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국경 없는 자본시장의 확대를 추구하는 지구화는 환경주의와 문화주의에 기초한 반(反)지구화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한국에서도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며 지고지순한 가치로 떠오른 민족주의에 대해 ‘국사해체론’까지 등장할 만큼 비판이 일고 있다.
마지막 성역으로 남은 것은 민주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민주주의의 절대적 권위에 대해서도 도전이 시도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자 한스 헤르만 호페는 4월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저서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나남출판)에서 민주주의를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제도라고 비난했다.
그는 현대국가가 대부분 사회복지비 지출의 증가로 경제적 파산상태에 이르렀지만 범죄의 증가와 도덕적 타락이 더욱 심화된 것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문제점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민주제에서 대표자는 임시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재산을 보존하기보다 낭비할 수밖에 없고 무분별한 입법행위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인 파리드 자카리아 역시 7월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자유의 미래’(민음사)에서 “민주주의는 결코 절대선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주의의 대두와 함께 결합한 ‘국민을 위한’ 자유주의와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이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처럼 포퓰리즘 지도자에 의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의 등장은 ‘지나친 민주화가 오히려 자유를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
두 사람의 민주주의 비판은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우파의 관점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자유지상주의자로 분류되는 호페씨는 그 대안으로서 국가가 제공하는 안전과 보호 서비스를 자유경쟁 체제하의 보험회사들이 대신하는 극단적 사회계약론을 주창하기도 한다. 반면 자카리아씨는 1인당 국민소득 3000∼6000달러 수준의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권력집중을 견제할 수 있는 헌정적 자유주의가 보장된 조건에서만 민주주의가 유효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를 번역한 서울대 박효종 국민윤리교육학과 교수는 “호페씨의 주장이 과연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것인가는 회의적이지만, 우리가 병행 발전을 당연시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간에도 분명 긴장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화시대의 민주주의’(2000년)의 저자인 임혁백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냉전 종식이후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한 ‘심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나 선출된 대표자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조한 ‘질 높은 민주주의(quality democracy)’ 등 민주주의를 보완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대안까지 모색되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새뮤얼 헌팅턴은 20세기 민주화의 물결이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동유럽권 붕괴로 세 차례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21세기 들어 제4의 물결은 이슬람권의 장벽에 막혀 주춤거리는 양상이다. 과연 ‘20세기 최후의 유산’인 민주주의가 21세기에도 당당히 건재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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