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101>봉사(奉仕)

  • 입력 2004년 9월 7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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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은 금문에서 모나 어린 묘목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아마도 농경을 중심으로 살았던 고대 중국사회에서 농작물을 신에게 바쳐 한 해의 풍작을 비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로부터 ‘받들다’는 뜻이, 다시 奉獻(봉헌)에서처럼 ‘바치다’는 뜻이 생겼다. 그러자 원래의 의미를 나타낼 때에는 手(손 수)를 더하여 捧으로 분화했다.

仕는 人(사람 인)이 의미부이고 士가 소리부이다. 人은 서 있는 사람의 측면 모습을 그렸음을 쉽게 알 수 있지만, 士의 자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士가 工(장인 공)과 같은 도구를 그렸다고 하기도 하며, 또 어떤 학자들은 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은 채 단정하게 앉은 법관의 모습을 그렸으며 그로부터 선비라는 뜻이 나왔고 다시 남성을 아름답게 부르는 명칭이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소를 뜻하는 牡의 갑골문 자형에 들어있는 士의 모습처럼 士는 남성의 생식기를 그렸으며 이로부터 남성이라는 의미가, 다시 선비와 같은 지식인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士로 구성된 다른 글자들, 예컨대 壯은 장(나뭇조각 장)이 소리부이고 士가 의미부인데 씩씩하고 강인한 ‘남성’을 지칭하고, 壻(사위 서)는 胥(서로 서)가 소리부이고 士가 의미부인데 사위를 뜻하고, 吉은 집 입구(口·구) 밖에 세워 놓은 남성 숭배물(士)을 그려 ‘吉祥(길상)’의 의미를 그린 글자로 모두 남성 숭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련 글자들로 볼 때, 士의 경우 초기 단계에서는 갑골문 牡에서의 형태처럼 남성의 생식기를 그렸으며, 이후 세로획에 장식용의 점이 더해졌고 금문 단계에서는 그 점이 가로획으로 변해 지금의 士와 같이 변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남성의 생식기로부터 생식력이 강한 건장한 남성의 상징이 되었으며, 다시 남성에 대한 총칭으로, 다시 선비 등의 의미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두 손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은 법관의 모습이라는 해석은 금문 단계 이후의 자형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仕는 바로 남성(士)이라는 사람(人)이 할 일이라는 의미로, 고대의 남성 중심사회에서 그것은 벼슬살이, 즉 정치를 배워 남을 위해 일함을 상징했다. 그래서 奉仕란 그러한 벼슬살이처럼 인류와 나라와 남을 위해 그 직분을 받들고 자신을 희생해 가며 힘쓰는 것을 말한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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