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추석 극장가 흥행 맞대결 예고…이범수 VS 차승원

  • 입력 2004년 9월 8일 18시 04분


이범수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 스타가 아닌 외롭게 꿈을 키워간 평범한 사람을 다뤄 더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박주일기자
이범수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 스타가 아닌 외롭게 꿈을 키워간 평범한 사람을 다뤄 더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박주일기자
《누가 진정한 슈퍼스타가 될까? 추석 대목을 겨냥해 17일 나란히 개봉되는 영화 ‘귀신이 산다’의 차승원과 ‘슈퍼스타 감사용’의 이범수. 서른넷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각각 코미디와 아웃사이더의 삶을 그린 드라마에서 특유의 개성을 마음껏 보여줬다. 두 배우를 스크린 밖에서 만났다.》

▲야구소재 ‘슈퍼스타 감사용’이범수

‘넘버 3’의 송강호, ‘친구’의 유오성, ‘신부수업’의 문근영….

흥행이나 배역의 크기를 떠나 배우와 극중 캐릭터가 딱 맞아 떨어지는 ‘천생배역’이 있다.

영화 ‘귀신이 산다’에서 집의 소유권을 놓고 여자 귀신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차승원(오른쪽)이 이 영화의 포스터 옆에서 익살스럽게도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김미옥기자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 감독)의 타이틀 롤을 맡은 이범수도 그렇다.

감사용(47)이 누군가? 직장 야구팀에서 활동하다 1982년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했지만 평범하게 사라진 야구인이다. 5시즌 던지는 동안 그의 성적은 1승15패1세이브. 그의 등판은 그 경기를 ‘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범수는 야구와 영화로 분야는 다르지만 ‘두 감사용’에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감사용의 현역시절 체격은 172cm, 70kg, 이범수는 171cm, 67kg.

“배우 일생에 40∼50편의 작품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시나리오나 캐릭터를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요. 설경구씨는 ‘박하사탕’으로 ‘몸에 착 달라붙는’ 시나리오를 일찍 만났지만 난 이제 만난 것 같아요.”

그의 반응이 다소 흥분돼 있는 것은 영화 속 ‘패전처리 투수’ 감사용과 자신의 연기 인생이 자주 겹쳐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초 감사용씨를 만났는데 ‘너도 투수냐’는 식의 동료들 구박이 있었지만 그럴 땐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찡했어요.”

‘B급 영화’라는 표현을 배우에게 대입한다면 그는 ‘B급 배우’의 이미지다.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한 뒤 ‘태양은 없다’로 자신이 개성 있는 조연임을 알리기까지 8년이 걸렸다. 2002년 ‘몽정기’를 통해 주연 배우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양아치(‘정글 쥬스’), 조로증(早老症) 환자(‘오! 브라더스’), 소심한 순정파(‘싱글즈’), 내성적인 버스기사(‘안녕 UFO’) 등 주변인이나 왜소한 인물들을 연기했다.

그래서 감독은 처음부터 ‘감사용=이범수’라는 캐스팅 등식을 고집했고 출연하겠다는 이범수의 구두 약속만 믿고 1년반 이상을 기다렸다.

그런 감독도 이범수의 첫 투구를 보고는 당황했다. 오른손잡이 이범수가 감사용의 폼에 맞춰 왼손으로 투구하자 공이 ‘아리랑 볼’처럼 원을 그리다 힘없이 떨어졌던 것. 하지만 ‘독한 배우’ 이범수는 3개월간 매일 200개 이상의 공을 던지며 왼손 투수 감사용으로 변신했다.

“데뷔작에서 했던 단 한마디의 대사가 ‘오늘 우리가 혼내주자’였어요. 기회란 것은 약속 시간에 늦는, 진정한 ‘친구’와 비슷해요. 반드시 온다는 확신이 있다면 5분, 5시간의 기다림은 중요하지 않죠. 사정이 있어 조금 늦을 뿐이지 꼭 오니까….”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코미디물 ‘귀신이 산다’차승원

차승원이 또 해줄까?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이상 2001년) ‘광복절 특사’(2002년) ‘선생 김봉두’(2003년)의 잇따른 흥행 성공에 이어 그가 올해 추석 5연타석 홈런에 도전한다. 김상진 감독의 ‘귀신이 산다’. 3대째 셋방살이를 면치 못하다 사회생활 10년 만에 거제도 바닷가 이층집을 산 필기(차승원)가 집에 살고 있던 귀신(장서희)에 맞서 필사적인 소유권 다툼을 벌이는 코미디다. 영화에서 그는 수백 마리 닭 떼에 맞서고 손발이 뒤바뀌는 아픔을 겪는가 하면 소파와 부엌칼의 집중공격을 받는다.

7일 서울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의외로’ 진중하고 깊고 격정적이었다. 그가 5개의 화두를 진솔하게(혹은 노골적으로) 끄집어냈다.

①집?=자기 집을 가질 때의 기쁨을 전 알아요. 결혼(1988년) 후 열네 번 이사 끝에 작년에 집 장만했거든요. 땅덩이 좁은 나라에서 집이란 건 자기 울타리잖아요? 그걸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수컷들이 정말 땀나게 일하죠. 결혼한 남자는 자식과 자기 집만 있으면 먹지 않아도 배불러요.

②왜 또 코미디?=멜로 찍는 배우들에겐 멜로를 찍고 또 찍어도 ‘왜 또 멜로냐?’고 묻지 않으면서, 왜 저한테만 ‘또 코미디 찍느냐’고 물어보죠? 저도 남자고 결혼도 했는데 왜 멜로 감정이 없겠어요. 방식이 다를 뿐이죠. 웃고 떠들면서 그런 표현 안 해서 그렇지, 전 정말 목숨 걸고 연기하고 있거든요.

③이미지 관리?=‘키 크고 몸도 좋은데 왜 망가지느냐’고들 해요. 전 비트는 게 좋아요. 억울하고, 일마다 꼬이고, 못난 삶을 살아오긴 했지만 남에게 지기는 싫고, 뭐 이런 남자 표정이 좋아요. 귀엽잖아요. ‘왜 고추장 광고에 나가느냐’고도 하는데, 안 해야 할 이유는 또 뭔가요? 전 ‘이런 것만 골라 해야겠다’ 식으로 이미지 관리하지는 않아요. 반대로 ‘왜 안돼(Why not)?’ 식으로 접근하죠. 진짜 이미지 관리는 자기 인성을 제대로 관리하는 거예요. 이중적으로 사는 배우들도 있거든요.

④연기란?=새 같은 거예요. 모이 줘서 잘 키운 뒤에는 휙 날려 보내야죠. 어떤 배우들 보면 예술영화 한 번 찍었다고 예술가가 다 된 것처럼,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든요, 아휴…. 배우는 ‘특별한 직업’이 아니라 ‘특수한 직업’일 뿐이에요.

⑤고민?=전 제가 얘기하는 걸 사람들이 재밌어할 때 두려워요. 그래서 수다를 떨어야 하는 방송출연은 득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하죠. 열 마디 말 중에 쓸데 있는 얘기는 한두 마디밖에 없어요. 나머지 여덟 마디가 만든 피해는 고스란히 내 가족에게 돌아가죠.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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