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값이 싼 정도도 상식선을 넘어서면 덜컥 의심부터 든다. 어떻게 저런 가격이 나올까, 남는 게 뭐가 있을까….
7000원짜리 대리운전, 9900원짜리 광어회, 3300원짜리 화장품…. 이른바 가격파괴를 지나 초저가로 승부하는 상품들. 결론부터 말하면 분명히 ‘남는 것’이 있다.
피나는 원가절감 노력을 기울이거나 남들은 미처 생각지 못한 상술을 동원해 가격을 낮추는 ‘초저가의 진실’은….
○ 대리운전의 세계
대리운전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서울시내에만 60∼70개 업체가 난립해 있다. 그러다 보니 2만∼3만원(서울 시내 기준)이던 대리운전이 이제 1만4000원은 보통이고 최근에는 7000원짜리까지 나왔다.
서울 시내 같은 구(區) 안에서 이동할 경우에 한해 가격을 7000원까지 낮춘 서울 C사. 대리운전 한 건에 수수료 20%씩만 받고 나머지는 대리운전자들이 비용을 절감한다.
그렇다면 대리운전자들은 수수료 1400원을 뺀 나머지 5600원으로 영업이 가능한 것일까. 종전에는 대리운전자가 손님을 데려다 준 후 돌아올 때의 택시비도 안 되겠지만 지금은 거점 운영방식을 도입해 비용이 대폭 줄었다.
즉 시내 각 지역에 퍼져 있는 대리운전자들은 회사로부터 연락(통칭 ‘콜’이라고 부름)이 오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해당 지역으로 출동한다. ‘가깝다’는 것은 택시로 2000∼3000원이 넘지 않는 거리. 손님이 내리면 그 지역이나 근처 번화가에서 다시 ‘콜’을 기다린다.
또 2, 3개 구마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순회차량(1회 이용료 2000원)이 1시간 단위로 돌기 때문에 유흥가 밀집지역으로 쉽게 나올 수 있다.
따라서 대리운전자 입장에서는 최대 5400원에서 적어도 2000∼3000원이 수중에 들어오는 셈이다. 짧은 거리를 가는 손님 입장에서도 이익이기 때문에 손님이 적지 않다.
또 한 업체가 여러 가격대의 대리운전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리운전자들은 1만4000원짜리나 2만원짜리 ‘콜’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간간이 인심후한 손님들은 팁을 주기도 한다. 대리운전자 이모씨(34)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월평균 180만∼2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에 반해 ‘9900원짜리 광어회’는 대부분 다소의 상술이 가미된 것.
활어 공급을 하는 김모씨(48)는 “시중에 나와 있는 9900원짜리 광어회는 대부분 속성으로 키운 것들”이라며 “400∼500g짜리를 4000∼5000원에 받아 판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횟집의 광어는 1kg짜리를 1만1000∼1만2000원대에 납품받아 팔지만 초저가 광어는 절반 가격에 들여온다는 것. 비타민, 영양제 등을 먹이면 한 달 반 만에 약 500g까지 키울 수 있다(정상적인 광어는 석 달 정도 걸림)고 한다.
물론 이들 가게에서는 대부분 밑반찬도 거의 없고 매운탕도 따로 돈을 내야 한다.
○ 가격의 비밀은 노력
국산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600여가지 품목 중 절반가량이 3300원 미만. 나머지도 1만원이 넘는 것은 한 개도 없다. 같은 종류의 다른 국산 제품 가격의 10∼20% 수준.
이 회사의 3300원짜리 화장품은 어떻게 나올까.
내용물 자체에 들어가는 제조원가는 1500∼1800원대. 이는 다른 회사 화장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미샤측의 주장이다. 대신 포장과 용기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했다고 한다. 또 화장품 가격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유통, 광고비를 거의 들이지 않는다.
회사 마진을 붙여 가맹점에 나가는 가격이 2100원 선. 판매가 3300원은 가맹점 마진이 붙은 금액이다. 여러 단계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이 가격이 가능하다는 말. 또 생산의 80%를 아웃소싱하기 때문에 인건비, 시설 고정비 등이 적게 들고 외상거래가 없어 금융비용이나 수금을 위한 별도의 조직도 필요치 않다.
올 2월부터 시작한 광고도 미리 광고예산을 책정하면 제품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지만 미샤는 사후에 매출 이익금에서 투자 개념으로 집행을 하기 때문에 제품 가격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 7000∼8000원 선인 추어탕을 2500원에 파는 것은 남는 게 있을까.
서울 노원구 상계동 ‘강촌추어탕’ 집은 부대비용과 마진을 대폭 줄이고 박리다매 방식을 택한 경우. 직거래로 공급받는 미꾸라지 가격이 도매가격 절반 수준인 kg당 4000∼5000원. 밑반찬도 김치, 깍두기, 조개젓 외에는 없고 그나마 전부 셀프다. 음식물을 치우는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추어탕 한 그릇당 총원가는 1800∼1900원 선. 이 가게 김애련 사장은 “그릇당 600∼700원 정도만 남기고 있다”며 “그래도 많이 팔리니 장사가 된다”고 말했다.
○ 초저가 전략이 성공하려면?
경제가 안 좋을수록 관심을 끌게 되는 초저가 마케팅. 여러 가지 경영전략 중 가격이 주는 충격이 워낙 크다 보니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초저가 전략을 통해 장기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고 홍성준 메타비 경영 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말했다.
초저가 제품들은 대부분 단기적으로는 뜨게 되지만 소득이 늘어날수록 ‘고급’을 지향하는 소비자 심리 때문에 외면당하기 쉽다는 것. 다만 미국의 월마트처럼 시장 전체의 가격 구조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예외다.
초저가 상품들은 결국 다른 상품 개발이나 사업 다각화를 통해 회사를 성장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례로 7000원, 1만4000원 대리운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모 대리운전회사조차 이달 초부터 외제차 만을 대상으로 ‘명품 대리운전’을 선보였다. 명품 대리운전의 가격은 3만원. 비싼 대신 복장, 서비스, 말투 등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홍 연구원은 “아무리 초저가라도 마진이 남는 이유가 반드시 있고 단기적으로는 성공하기 쉽다”며 “가격이 다른 어떤 구매 요소보다 중요한 제품이 아니라면 금방 식상하거나 싸구려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사후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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