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은 지난달 31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구치는 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라운지 바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올해 두 브랜드의 패션쇼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일방통행’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처음으로 여성 옷을 입는 남성 모델들을 선보였다. 구치의 쇼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10년 동안 몸담았던 구치를 떠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전문 모델만이 무대에 서는 해외 패션쇼와 달리 국내에서의 패션쇼는 인기 연예인을 무대에 올려 주목도와 재미를 높였다. 샤넬은 이동건과 김정은, 구치는 김남진과 이소라를 내세웠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 국내 패션쇼 현장 지상 생중계.
○CHANEL 여성 옷 두른 ‘남성 해방’
‘일방통행(One Way Street)’이라고 쓰인 빨간색 이정표 모양의 초대장을 들고 패션쇼장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샤넬의 영원한 모티브, 동백꽃이 그려진 신호등이 나타났다.
1955년 2월 처음 디자인돼 ‘2.55’ 핸드백이라 불리는 샤넬의 클래식한 체인 퀼팅백을 어깨에 멘 우아한 차림의 샤넬 마니아 800여명이 속속 패션쇼장으로 들어왔다. 김남주, 김나운, 김원희 등 연예인들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대의 불이 켜지면서 샤넬의 트위드 재킷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했다. 이번 시즌 샤넬은 트위드 재킷의 밑단에 레이스를 달거나 올을 풀어 디테일을 살렸다. 김정은은 낙하산 문양이 프린트된 시폰 드레스를 입었다.
20세기 초까지 코르셋을 입고 토트백을 들었던 여성들을 위해 코르셋을 생략해도 가능한 헐렁한 실루엣 의상과 어깨에 메는 숄더백을 디자인해 ‘여성 해방’을 가져온 고(故) 가브리엘 샤넬.
그녀의 패션 정신을 이어 받아 1983년부터 샤넬에서 일하는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발등을 덮은 옥스퍼드 앵클부츠, 굽 낮은 단화, 중절모 등으로 여성의 패션에 강인한 남성미를 가미했다.
30대 후반의 한 VIP 여성 고객은 “해외 컬렉션과 달리 국내 패션쇼에서는 모델뿐 아니라 쇼에 찾아오는 다른 여성들의 옷차림을 통해 패션 감각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배우 이동건을 비롯해 남성 모델 3명이 입은 트위드 재킷과 모직 코트 등은 본래 여성용 의상으로 샤넬은 이번에 남성과 여성의 옷 사이에 존재하던 심리적 장벽을 완전히 허물어 버렸다. 과거 여성을 자유롭게 했던 샤넬은 이제 남성을 해방시키려 한다.
○GUCCI 자유-향락 입은 ‘섹시미’
10년 동안 구치에 몸담으며 오늘의 구치를 있게 한 톰 포드. 그는 마지막 쇼를 진행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완성하고 싶은 구치의 남성상은 향락주의를 탐닉하는 시크한 플레이 보이이다. 그는 음주 흡연 섹스 등 삶의 물질적 측면을 매우 좋아한다.”
300여명의 소수 정예 패션 피플이 참석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라운지 바 ‘트라이 베카’는 온통 검은색 인테리어에 계단식 좌석으로 연극 무대를 연상케 했다. 엄정화 이혜영 공효진 조인성 등 연예계의 패션리더들이 객석 맨 앞줄을 채웠다.
구치의 꽃분홍색 새틴 스트랩 슈즈와 금색 체인이 화려하게 장식된 ‘주얼리 라인’ 핸드백으로 섹시하게 치장한 패션 피플은 슬림한 빨간색 벨벳 턱시도 슈트 차림의 모델 김남진이 등장하자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는 오른손에 조니 워커 위스키 술잔과 불붙은 담배를 들고 도도하게 워킹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쇼에서 은퇴한 유명 모델 조지나 그렌빌을 등장시켰던 구치는 국내에서는 고참 모델 이소라를 무대에 올렸다. 흰색 드레스, 스모키한 눈 화장, 윤기 있게 빗어 묶은 시뇽 헤어스타일의 이소라는 관객들의 ‘브라보’ 갈채를 받았다.
벨벳 턱시도, 새틴 드레스, 여우 털 재킷, 타이트한 남성 바지…. 톰 포드의 결정체들이 런웨이에 계속 쏟아졌다.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어 룩 오브 러브’ 등의 로맨틱한 음악으로 쇼가 마무리되자 검은색 장막이 걷히면서 백인 여성 4명이 막대봉 옆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상반신 나체의 남성 20명은 칵테일을 서빙했다. 금세 파티장으로 변신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대화하고, 웃고, 춤을 췄다. 구치의 패션쇼는 자유롭고 섹시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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