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캘린더]극단 청우 ‘웃어라 무덤아’…우리 속의 탐욕 엿보기

  • 입력 2004년 9월 9일 17시 00분


사진제공 극단 청우
사진제공 극단 청우
극단 청우가 대학로 아트홀 스타 시티 극장에서 공연 중인 ‘웃어라 무덤아’는 지난해 초연됐던 창작 연극이다. 올해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2001년 ‘인류 최초의 키스’의 성공 이후 대학로의 대표적인 흥행 연출가로 꼽혀 온 김광보씨가 ‘인류…’의 작가였던 고연옥씨와 다시 손잡고 만든 블랙 코미디다.

‘웃어라 무덤아’의 주인공은 자신의 장례비 100만원을 밤낮없이 허리춤에 차고 살던 할머니다. 일가붙이 하나 없는 할머니는 이웃들에게 정을 붙이며 살아간다. 딸처럼 곰살맞게 구는 구멍가게 여주인, 아들 같이 할머니가 끼니를 챙겨 먹여 온 택시운전사, 할머니를 누나처럼 여긴다는 여인숙 주인 영감….

어느 날 할머니는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100만원은 사라진다. 가족 같던 이웃들은 돌연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딸 같던 구멍가게 여주인은 100만원 헌금을 약속한 종말교 신자였고 아들 같던 택시운전사는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흉악범 전과자였다. 동생 같던 여인숙 영감은 알고 보니 포주 출신으로 최근 만난 새 여자 때문에 100만원을 필요로 하던 처지. 여기에 10대 동거 부부인 미나와 진이 역시 돈을 훔친 전력으로 의심받는다. 경찰서 유치장에 모인 이들은 미나의 추궁 끝에 죽음의 진실을 밝혀 낸다.

김광보씨는 “작은 물질적 욕망 때문에 인간됨을 상실해 가는 극 중 이웃의 모습에 우리를 투영하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사실적인 인물 묘사 대신 희화화된 배우들의 캐릭터와 능청스러운 연기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지만 할머니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객석에는 씁쓸함이 감돈다. 비수보다 더 날카롭게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말의 무서움, 가까워서 더 깊은 상처를 주는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과 이중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실제 나이가 3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90도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 역을 잘 소화해 낸 문경희와 그에 못지않게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친 택시운전사 역의 오재균이 돋보인다. 8000원∼1만2000원. 02-764-7064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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