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락부락한 장수가 아니라 고뇌하는 카리스마를 가졌어요.” (‘김효정’)
4일 첫 방영된 KBS1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토일 밤 10:00)에서 탤런트 김명민이 연기하는 이순신의 이미지에 대해 시청자들의 평이 엇갈리고 있다. 김명민의 이순신은 ‘23전 23승’이라는 불패 신화에서 떠오르는 강인한 무장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공동 원작인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처럼 김명민의 이순신은 ‘바다에서 늘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한다. “힘이 빠져 보인다”는 회의적 반응도 있지만 “감성의 카리스마가 멋지다”는 여성 시청자들도 많다. ‘불멸의 이순신’의 30대 여성 시청률은 12.5%(TNS미디어코리아)로 전편 ‘무인시대’의 7.4%보다 크게 오른 양상을 보였다.
인상학 연구가인 주선희 박사는 김명민에 대해 “하관이 약해 앞서 싸우기보다 작전을 짜는데 능하고, 풀린 듯 걸려 있는 쌍꺼풀진 눈은 굼뜨나 치밀해 실수가 없으며, 굴곡 없이 삐죽한 칼귀는 고집이 세 조정에서 시키는 대로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햄릿형 이순신
“누군가 갑자기 뺨을 때리면 한발 내 디뎌 패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한 발 물러서 ‘저 사람이 왜 나를 때렸을까’ 고민하는 이가 있다. 전자가 원균이고, 후자가 이순신이다.” (김탁환 한남대 문예창작과 교수)
이 드라마 공동 원작인 소설 ‘불멸’을 쓴 김 교수는 “원작과 드라마의 이순신 이미지가 대체로 일치한다”고 평했다.
김 교수의 말대로 드라마에서 이순신은 행동하거나 말하기보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더 많다. 격렬한 해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움직임이 없고 생각이 깊어 휘하 장수들을 조급하게 한다. 대본을 보면 ‘고민한다’ ‘가슴이 아프지만 묵묵하다’ ‘아프게 본다’ 등 심리를 묘사하는 지문이 많다.
드라마 속 이순신이 숙고 끝에 내뱉는 대사도 ‘명언’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전쟁에서 죽음이란 항상 등짐같이 짊어지고 다니는 것일 뿐이다.” (아끼던 장수가 죽자)
“연다고 열어질 길이 아니다.” (일본 자객의 공격에 부하가 ‘길을 열 테니 피하라’고 하자)
“여해로 하라. 늘 바다처럼. 젊은 시절 나 또한 여해였느니라.” (딸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하에게)
○ 역사 왜곡? 역사 외연의 확장?
김명민의 ‘식은 땀 흘리는’ 연기에 대해 드라마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다.
‘최재호’는 “그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면 지략뿐만 아니라 조직 장악력도 보여야 할 텐데 마치 전쟁터에 갓 쓰고 나온 선비 같다”고 말했고 ‘’김광수‘는 “이순신의 눈이 풀려 있어 힘없는 패배자 같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내면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무장의 모습이다”(‘정재봉’) “신화로 포장되지 않고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역사의 위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이주연’) 등 두둔하는 의견도 많다.
최영호 해군사관학교 교수(문학평론가)는 “이 드라마에서 이순신은 더 이상 우상이나 신으로 군림하지 않고 살과 피가 감도는 인간적 존재”라며 “인간으로서 살고자 했던 이순신의 삶을 가감 없이 바라볼 때가 됐으며 이는 역사의 외연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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