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詩로 환생한 백제의 혼…문효치시인 ‘백제시집’ 펴내

  • 입력 2004년 9월 10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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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것은 당신만이 아니다./갈대숲에 바람 부는 소리를 내며/내 몸 속에도/죽음은 수시로 드나든다./그럴 때마다/내 누운 방은/한 채의 상여가 되기도 하고/어두운 무덤 속이 되기도 한다./죽은 자의 혼령들이여/죽은 것은 당신만이 아니다.’

문효치 시인(61·사진)의 시 ‘무령왕의 능’ 전문이다. 시인은 1970년대 초 고등학교 국어교사 시절, 덕수궁에서 무령왕릉 발굴 유물전에 옻칠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목관을 보고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배’라는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백제 유물로 부활한 백제인들과 자유자재로 만남으로써 이승과 저승이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한데 섞여 있는 하나의 삶, 하나의 세계임을 깨달았다.”

30여년간 백제 유물을 광맥삼아 시어를 캐 온 시인은 지금까지 써 온 200여편 중 99편을 추려 40년 시업을 기리기 위해 최근 ‘백제시집’(문학아카데미·150쪽·6000원)을 펴냈다. 시인에게 포착된 백제와 무령왕은 박제된 역사나 권위가 아니라 영혼의 부활과 초월, 삶과 죽음, 사랑과 슬픔을 사유하는 실마리다. 그리하여, 경탄과 탄식 속에 이미 오래전 잊혀지고 사라진 한 왕조의 역사는 낯익고 친근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렇지, 님을 실어 저승으로 저어가던 한 척의 배가 세월의 골 깊은 앙금에 익어 지금 여기에 머무르다. 이별을 서러워하던 혈육의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 쉬임없이 들려오는 창생(蒼生)의 울음소리, 짭짜름한 저승의 바람 냄새가 잡혀 와, 그렇지, 우리가 또 빈손으로 타고서 아스름한 바다를 가르며/저어가야 될 듯 한 척의 배가 여기에 왔지’(‘무령왕의 목관’ 전문)

이 밖에 무령왕의 은팔찌, 지석, 벽돌, 금구슬, 뒤꽂이, 술병, 소나무, 귀걸이 등 사물의 이름으로 붙여진 시 제목들이 암시하듯 시인은 왕조의 연대기나 굵직한 사건으로서의 백제가 아니라 사물로서 존재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백제를 조명한다. 강우식 성균관대 교수(시인)는 해설에서 “그의 백제시는 저승과 이승,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교통(交通)의 시학(詩學)”이라고 평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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