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문인이었던 서애는 임진왜란 시절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군무를 총괄하면서 권율 이순신 등 명장을 등용하고 명(明)과의 외교적 마찰을 줄이는 등 난국을 헤쳐 가는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한 명재상으로 꼽힌다.
이번에 위탁된 목판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애가 임진왜란 7년의 경험을 회고록 형식으로 정리한 징비록(懲毖錄·국보 132호)을 판각한 목판 221장이다. 또 1916년 퇴계학파의 사승관계를 기록한 ‘도산급문제현록변정(陶山及門諸賢錄辨訂)’ 목판 52장도 눈길을 끈다. 이 목판은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계와 서애계로 양분되는 퇴계학파의 헤게모니 다툼 과정을 보여 준다. 학봉계가 퇴계 사후 4번에 걸친 집성 과정을 거쳐 1914년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을 만들자 서애계 유생들이 이에 반발해 도산급문제현록변정을 만들었다.
이 밖에 퇴계 사상의 핵심이 담긴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침병(枕屛·잠자리 옆에 둘러치는 작은 병풍) 용도로 판각한 목판, 전란 중 각종 병고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서애가 손수 중국의 침구학 저술 내용을 실생활에 쉽게 활용하도록 요약 정리한 ‘침경요결’ 목판 등도 귀중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심우영 원장은 “지난해 퇴계의 저작을 중심으로 한 도산서원 소장 목판 3975장이 위탁된 데에 이어 서애 집안의 목판까지 들어옴으로써 조선조 영남학파 자료의 상당 부분이 집성됐다”고 말했다. 위탁 문의 054-851-0768.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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