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15일 “일제가 굴욕을 강요하기 위해 지은 신궁 터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살해해 민족정기를 드높인 안 의사의 사당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며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부터 안중근의사기념관 이전 및 사당 건립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와 안중근의사숭모회 등이 마련한 사업안에 따르면 남산의 명당자리인 조선신궁 터 3000여평에 현재 남산 서쪽 구석에 위치한 안 의사 기념관을 옮겨온다는 것. 이와 더불어 안 의사 참배를 위한 사당과 교육관 등도 새로 짓는다. 남산식물원은 1994년에 철거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인아파트 부지로 이전할 계획.
현재의 안 의사 기념관은 120평에 불과한 데다 개관(1970년)한 지 34년이 지나 매우 낡고 협소한 상태. 이 때문에 숭모회측은 20여평에 불과한 기념관 앞마당에 16개의 기념비와 기념동상 등을 빽빽이 세워 놓았다. 위치도 남산 순환도로에서 200m 이상 떨어진 한적한 곳이어서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이 하루 10여명에 불과한 실정.
숭모회측은 새 부지에 안 의사 사당과 기념관 등이 들어서면 현재 하루 10여명에 불과한 참배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소요 예산은 300억∼400억원으로 추정된다.
다만 신궁 터 주변에 남산 성곽 터가 남아 있는 데다 이 땅의 명의가 재정경제부, 산림청 등 여러 기관으로 돼 있어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이들 기관의 사전 동의와 문화재를 담당하는 문화재청의 허가가 필요하다. 김광시(金光市) 안 의사 숭모회 사무처장은 “광복 60년이 다 되도록 안 의사의 사당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수치”라며 “일제강점기의 상징이었던 신궁이 있던 자리에 민족혼의 상징인 안 의사 기념관과 사당을 세우는 것은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조선신궁이란▲
일본의 신사(神社) 중 가장 격이 높은 게 신궁이다. 일제는 1910년 강제 병합 후 우리나라 전역에 신사를 건립한 데 이어 1920년부터 6년에 걸쳐 남산에 신궁을 지었다. 이후 조선인들의 참배를 강요해 1940년대 초에는 연간 참배객이 300만명 선까지 늘어났다. 일제는 패망 후 신궁을 자진 해체했다. 현재는 돌계단 118개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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