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출생아 수는 1970년 집계가 시작된 뒤 최저수준으로 떨어졌지만,
40세 이상 산모가 낳은 아이는 모두 5756명으로 21년 만에 최고치에 이르렀다.
또 지난해 40세 이상 산모 중 첫 아이를 출산한 경우는 1980명으로 10년 전(1043명)에 비해 2배가량 늘었다.
어떤 사회든 개인이 결혼 취업 출산 등 생애에서 이정표적 사건을 경험하기 적절한 시기에 대해 일치된 사회적 감각이 있다.
한국에서 그 ‘사회적 시계’는 평균 결혼연령과 첫 출산의 시점이 늦춰지면서 커다란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중이다.
‘중년 대 초산(Middle Age vs. First Birth)’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항목의 조합을 주저하지 않고 선택한 이들은
‘사회적 시계’를 새롭게 세팅하는 다양한 삶의 양식 가운데 두드러지는 추세다.
기존의 ‘사회적 시계’를 거슬러 ‘연령과 무관한 사회(Age-irrelevant Society)’인 미래상을 앞질러 사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 "내가 적령기를 만든다"
2년 전에 결혼한 채숙희씨(41·건설업)는 올해 2월 자연분만으로 첫 아이를 낳았다. 대학원을 마치고 건설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결혼이 늦어진 그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마음에 걸려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지만, 좋은 사람을 만난 뒤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병원에서 수술을 권했지만 아이 낳기 전날도 새벽까지 일하고 의외로 출산이 순조로워 남달랐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든다”고 한다.
마흔 넘어 자연분만을 하는 경우가 이젠 드문 일만도 아니다. 삼성제일병원에서 올해 들어 8월까지 첫 아이를 낳은 40대 여성은 27명. 이들 중 4명이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
3년 전 결혼해 올해 3월 첫 아이를 낳은 김영님씨(45)는 스스로가 “무리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을 겪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선 자꾸 ‘적령기를 넘겼다’고 우려하지만 적령기가 따로 있나, 내가 하는 나이가 나의 적령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임신했을 때 찾아간 병원마다 놀라면서 양수검사를 권유했지만 태아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해 검사를 받지 않았다. 김씨는 “고령 출산에 대비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고령 출산이 드물고 위험하다는 사회적 통념이 너무 강한 탓에 주변에서 자꾸 심리적 불안을 부추기는 풍토가 있다”고 말했다.
마흔 이후에 초산한 엄마들은 대체로 학업과 직장 때문에 결혼이 늦어졌거나 출산을 미루다가 뒤늦게 가족을 구성한 경우가 많다. 일반화하기 어려우나 삼성제일병원과 차병원 두 곳에서 무작위로 추천받아 인터뷰한 마흔 이후 초산 여성 6명도 모두 직업을 갖고 있거나 출산 직전까지 직장에 다녔던 대졸 학력의 여성들이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 사회학과 스티븐 P 마틴 교수는 현대사회 가족 패턴의 양대 변화로 편부모 가정의 증가와 함께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가족 구성의 시점이 늦어지는 것을 꼽았다. 그는 “가족 구성의 시점이 늦어지는 사례는 주로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은 가족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 안정된 양육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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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교수는 2002년에 발표한 보고서 ‘늦은 결혼과 출산’에서 “의학의 발달로 늦은 출산의 단점은 줄어드는 반면 경제적, 심리적 측면에서 장점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40대 초산 엄마들도 ‘사회적 시계’가 늦어졌다는 초조함 대신 양육에 대해 훨씬 안정된 태도를 보였다. 대개 경제적 안정을 다진 뒤에 부모가 되고, 특히 새로운 스트레스에 대처해야 하는 초기양육시기를 훨씬 더 성숙한 나이에 맞았기 때문이다.
탤런트 김미숙씨(45)는 곧 촬영을 시작할 영화 ‘말아톤’에서 스무 살 청년의 엄마 역할을 맡았지만 실제로는 다섯 살과 세 살배기 남매를 뒀다.
그는 마흔에 첫 아이를 가졌을 때 태교 교실의 강사가 “아이가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려고 태교를 하는 것”이라며 “아이가 나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하자 혼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나는 스스로를 방치한 적이 없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해 원하는 것을 이뤘다는 점에서 아이가 ‘나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아이를 나보다 잘 살게 하려는 욕심이 너무 크면 아이를 망치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20대에 아이를 낳았더라면 사느라 바빠서 “너 따로, 나 따로. 우리 이 다음에 만나자”같은 식으로 살았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치원 원장이었던 김영님씨는 자신이 가르쳤던 원생들이 벌써 엄마가 돼 그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는 “늦었다는 초조함은 별로 없다. 오히려 내 친구들은 아이를 대학이나 군대에 보내고 ‘빈 둥지 증후군’을 겪고 있지만 내 인생에서는 그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열한 살, 여덟 살 딸 둘을 둔 대학교수 정모씨(51)도 “20대에 결혼한 대학동창들은 정신없이 아이를 키워 양육을 힘든 일로만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늦은 출산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 자립심 강한 아이가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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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출산한 엄마들이 아이에 대해 갖는 공통된 욕심은 여행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과 강한 자립심을 갖게 하는 일이다.
김미숙씨는 “아이를 늦게 낳았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도록 둘을 낳았다”면서 “우리가 미처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가급적 많이 보여주고 스무 살이 되면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함께할 시간이 너무 적다’는 현실이 주는 불안감도 만만찮다.
대학교수 정씨는 “부모뿐 아니라 아이도 비슷한 스트레스를 겪는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 딸은 가끔 그에게 “엄마가 일찍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외할머니도 엄마가 서른두 살 때 돌아가셨는데 나는 그때 괜찮았어. 네가 마흔이 되면 엄마가 여든 살이고 평균 수명은 그보다 더 길어질 테니까 괜찮다”고 설명해준다. 아이의 불안감을 해소해주기 위해 운동을 하고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그는 “아이를 바르게 키울 것 같은 친구에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아이를 맡아 달라’는 말을 해놓았다”고 했다.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또래의 ‘젊은’ 엄마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함께 여행을 보내고 논술을 대비한 철학 공부 모임을 만들기도 하는 걸 보면, 나이의 갭 때문에 그런 정보의 유통에서 차단되는 것이 초조하게 느껴질 때도 잦다.
그래도 그는 아이를 낳은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경험을 한 것이 내게도 소중하고 아이도 그렇게 사랑받고 자라면 나중에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영님씨에게 ‘그 나이에 아이를 낳는 것이 자식이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생각하지 않는 부모의 이기심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이에게도 자기 몫의 삶이 있을 거다. 내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는데, 나는 살면서 엄마가 날 낳아줘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이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늦었어도 가능한 한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이 부모가 질 수 있는 최선의 책임이다. 아이의 인생 전체를 부모가 세팅해주겠다는 것은 아이의 개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글=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사진=강병기기자 arche@donga.com
모델=김영님씨(45)와 그의 첫 아들 진명
▼35세이상 고령출산 고위험은 이제 옛말?▼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고령출산’은 35세 이상의 출산을 말한다. 이 기준은 1958년 국제산부인과학회에서 정의된 것으로 35세 이상, 40세 이상 등으로 기준이 달리 적용되기도 한다.
고령 출산이 ‘고위험 출산’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고령 출산의 경우 유산이나 다운증후군 감염의 위험성, 저체중아 및 기형아 출산 확률이 높아진다. 또 고령 임산부의 경우 젊은 임산부보다 고혈압, 비인슐린 의존성 당뇨의 발생빈도, 난산의 위험도 높다.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보고와는 달리 산모와 아이의 건강에 관한 한 위험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어 있다.
정말 그렇게 위험하기만 할까. 가천의대 길병원 산부인과학교실은 지난해 대한산부회지에 ‘40세이후 고령 산모의 임신과 출산의 임상적 고찰’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40세 이상 산모 95명과 20∼40세미만 산모 94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산전, 산후 합병증과 신생아 현황을 비교 분석한 것.
그 결과 고령의 산모들에게선 제왕절개술의 빈도가 2배 이상 많았고 산전 특수검사 시행이 7배가량 많았으며 산후 합병증의 발병률도 높았다. 그러나 비정상태위, 조산, 불임력에 있어서 40세 이상과 이하의 산모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저체중아와 과체중아 모두 큰 차이가 없었고 신생아 중환아실 입원, 선천성 기형에도 차이가 거의 없었다.
이 보고서는 “고령 산모에게서 산후합병증은 증가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서는 차이가 없었다”면서 “과학의 발전으로 치료방법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에 고령 산모를 고위험 산모로 간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결론 맺고 있다.
한편 중국에선 아이를 늦게 낳은 사람들이 노년에 더 건강하다는 보고도 있다. 지난해 베이징대 경제리서치센터의 쩡이(zeng yi 발음 확인 필요) 교수와 미국 듀크대 막스 플랑크 인구조사협회 제임스 바우펠 교수가 공동으로 80세가 넘은 중국의 여성노인 9000명을 조사한 결과 마흔이 넘어 아이를 낳은 여성노인이 그렇지 않은 여성노인보다 장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중년에 출산한 여성들의 경우 에스트로겐 분비 기간이 길 뿐만 아니라 임신, 출산, 젖먹이기 등의 활동이 여성의 생물학적 시스템을 자극해 생존과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또 늦은 출산은 부모로 하여금 아이들이 결혼하고 자립할 때까지 생존할 수 있도록 건강에 더 신경을 쓰게 만드는 영향도 있다는 것.
그러나 확대해석은 위험하다.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전종관 교수는 “35세 이상이 고령출산인 것은 신체적으로 그 즈음에 염색체 이상의 확률 등이 높아진다는 뜻”이라며 “평균 수명이 길어진다 해도 남은 수명에 따라 변하는 종류의 기준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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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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