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라는 조선 초기 무관으로 종3품까지 벼슬을 지낸 인물로 알려져 일명 ‘장군미라’라고 불린다.
이번 연구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내시경 검사가 실시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발견된 미라는 34구이며 이 가운데 의학적 연구가 시도된 것은 5구인데, ‘장군미라’는 특이하게도 내부 장기가 오그라들지 않은 채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내시경 시도가 가능했다. 연구팀은 소화기내시경으로 기관지와 식도, 직장내시경으로 항문을 조사했다. 하지만 위, 장, 폐로 통하는 길이 막혀 있어 할 수 없이 가슴과 배 부위에 구멍을 뚫고 복강경과 흉강경으로 관찰했다.
▽외모는 60대, 치아는 40대=‘장군미라’는 턱과 코에 흰 수염이 길게 나있어 외형으로 봐서는 60대 정도로 추정됐다. 하지만 치아 3개를 뽑아 마모 정도를 검사한 결과 40대 초반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치아의 가장 바깥을 둘러싼 법랑질이 거의 닳아 없어졌고 안쪽의 상아질이 일부 노출된 정도를 바탕으로 나이를 추정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CT만으로 치아의 전체 모습을 알아낼 수 있는 ‘영상발치(또는 가상발치)’에 성공하는 뜻밖의 수확을 거두기도 했다. 얼굴의 내부 골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0.75㎜ 간격으로 단층촬영을 시도했는데, 3차원으로 골격영상을 재구성한 후 턱뼈 부위를 화면에서 지워내자 뿌리까지 생생하게 치아 전체 모습이 드러난 것. 2002년과 2003년 미국 연구팀이 이집트 미라를 대상으로 ‘잇몸에 박힌 치아’ 영상을 만들어 학계에 보고한 적은 있지만 뿌리 모습까지 담아내지는 못했다. 연구팀의 권종진 교수(치대)는 “앞으로는 치아를 뽑지 않고 CT만으로 시신의 나이를 정확히 추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라고 말했다.
▽애기부들 꽃가루의 비밀=‘장군미라’의 사망원인을 알려주는 강력한 단서는 애기부들 꽃가루에서 제시됐다. 연구팀은 식도, 위, 직장, 그리고 기관지에서 공통적으로 이 꽃가루를 다수 발견했다.
흔히 ‘꽃가루’ 하면 식물이 곳곳에 자신의 씨앗을 바람에 날려 퍼뜨리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그렇다면 ‘장군미라’에서 발견된 꽃가루는 사망 당시나 직후 또는 발굴 당시(처음 미라가 발견됐을 때 입이 벌려진 채 며칠 방치됐다) 바람을 타고 우연히 입 속으로 날아들어온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식도뿐 아니라 위와 직장에서도 발견된 것은 생전에 애기부들 성분을 섭취했다는 추측을 낳게 한다. 흥미롭게도 한의학에서 애기부들은 토혈, 코피 등 출혈을 막는 약재로 사용된다. 연구팀은 이로부터 ‘장군미라’의 주인공이 출혈 증세를 보이면서 급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호흡기관인 기관지에서도 꽃가루가 발견된 점.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몸에 이상이 생겨 식도에서 음식물을 포함한 한약재가 역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폐질환을 앓았다?=연구팀이 X선촬영과 CT를 통해 ‘장군미라’의 내부를 들여다봤을 때 가장 놀란 점은 폐가 의외로 잘 보존돼 있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미라는 이집트 미라와 달리 폐를 비롯한 각종 장기가 보존돼 있기는 하지만 오그라들어 있는 것이 공통 현상”이라며 “‘장군미라’의 폐는 정상 크기가 그대로 유지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장군미라’의 주인공이 폐질환을 앓은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폐렴이나 늑막염에 심하게 걸리면 폐가 늑막에 달라붙게 된다”며 “이 때문에 사망 후 폐가 오그라들지 못하고, 더구나 사후 진행된 부패로 인해 질환 부위가 더욱 크게 늘어나게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추측을 꽃가루 분석결과와 연결시켜 사망원인을 ‘폐질환으로 인한 급사’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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