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신부는 20일자 경남도민일보에 쓴 칼럼에서 추기경은 최근 박근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을 아직 믿을 수 없다”며 북한의 적화침략을 걱정하신 반면 박 대표가 재작년 북한 수괴 김정일과 다정하게 웃으며 국가의 미래를 나누고 온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고 지적한 뒤 “추기경님의 이중적 모습에서 저희들은 무엇을 배워야합니까?”라고 반문했다.
백 신부는 1989년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 때문에 국보법의 ‘불고지죄’로 조사받을 뻔 했던 추기경이 “국보법은 장기적으론 없어질 수 밖에 없지만 아직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15년 전 추기경께서 안기부에 연행되어 가셨다면 어떻게 되었겠냐”며 “악법을 없애는 데는 이른 시기가 없고,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해식 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백남해 칼럼 전문
추기경님의 이중적 모습에서 무엇을 배워야합니까?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추석이면 태풍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곤 합니다. 작년 추석에는 ‘매미’가 이 땅을 할퀴고 지나며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를 내었습니다(삼가 명복을 빕니다). 제가 일하는 복지관도 작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올해 추석은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기경님!, 젊은 신부가 가지는 이런 작은 걱정거리보다 더 큰 걱정거리가 많으시겠지요. 걱정거리가 많으시더라도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환절기라 감기와 장염이 극성이라 합니다. 젊은이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연로하신 분들께는 위험할 수도 있겠습니다.
추기경께서는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저 또한 가까이에서 한번 식사를 하였고 먼발치에서 몇 번 뵈었을 뿐입니다. 식사 자리는(추기경께서는) 기억도 없으시겠지만, 10년 전쯤 마산 양덕 성당에서(추기경님의) 지인 장례미사에 참석하신 후 가진 자리였습니다. 그때 저는 양덕 성당의 보좌신부였습니다. 신부로 서품된 지 3년 된(추기경님 보시기에) 아주 ‘어린신부’였습니다. 제가 추기경님의 제의 가방을 들고 아리랑 호텔 식당으로 앞장서 모시고 갔었습니다. 다른 신부님 두 분과 함께 넷이서 식사를 했습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 이름을 물으시고는 식사 많이 하라는 말씀에, 정신이 없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양심이었습니다
추기경님!, 그 날 제가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웠던 것은, 단순히 유명인사이기 때문이거나 추기경이라는 높은 계급(?)의 고위 성직자와 함께 밥을 먹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추기경께서는 시대의 어른이시며, 한국 천주교의 살아있는 양심이셨습니다. 저는 당시 ‘천주교 정의구현 마산교구 사제단’총무로 일하였습니다.
명동성당 난입이라는 YS 정권에 의한 만행을 당하면서, 긴 시간 단식 기도회를 하며 나름대로 시대의 아픔에 대하여 눈을 뜨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만난 추기경님은 그야말로 저에게는 스타 중의 대 스타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추석이 다가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성공하여 ‘금의환향’하는 이도 있겠고, 어려운 경제 사정에 겨우 고향을 찾는 이도 있을 것이며, 너무나 힘들어 떠나지 못하고 고향을 멀리서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 누구든지 가슴 설레는 때입니다. 아무튼 가을은 지나고 겨울이 올 것입니다.
사람 또한 하느님께서 지으시고, 찬란한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나면 그 본향인 하늘 나라로 돌아갈 것입니다. 살아오며 진실하게 하느님을 따르고 그 법을 지킨 이라면 ‘금의환향’하는 마음으로 평온히 떠날 것이요, 그렇지 못한 이들은 떠남 자체가 두려울 것입니다. 추기경님!, 서울대교구 교구장직을 내어놓으시고 떠나실 때 참 멋져 보였습니다.
보안법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역시 큰 어른이시구나!, 아직 기운이 있고 바라보는 이가 많지만 미련 없이 털고 가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제 어깨가 괜히 우쭐거렸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것이 어찌 쉽겠습니까? “나무는 가만있으려 하나 바람이 두지 않는구나!”라는 말처럼, 아직 추기경님에게서 빨아먹을 단물이 있다고 여기는 추악한 상업주의에 눈 먼 언론과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칠 줄 모르고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일부 썩은 정치인들이 당신을 흔들어대는군요.
보도에 따르면 “보안법은 장기적으로는 없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아직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가 보안법이 필요 없는 법임에는 틀림없지만 폐기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추기경께서는 1989년 서경원 전 의원의 밀입북 사건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로 조사 받을 뻔 하셨지 않습니까. 15년 전 추기경께서 안기부에 연행되어 가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악법을 없애는데는 이른 시기가 없고,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 아닙니까?
박근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을 아직 믿을 수 없다”며 북한의 적화침략도 걱정 하셨다죠. 그렇다면 박 대표가 재작년 북한 수괴 김정일과 다정하게 웃으며 국가의 미래를 나누고 온 것에 대하여 왜 따끔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추기경님의 이중적 모습에서 저희들은 무엇을 배워야합니까?
날씨가 고르지 못합니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쉽게 견뎌내는 것도 연세가 드시면 이겨내기 힘듭니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시골 한구석 어리석은 젊은 신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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