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거상’… 원저우 상인이 상하이를 거머쥔 비결은

  • 입력 2004년 9월 24일 15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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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신호에서 ‘차세대 세계 수도’로 지목한 상하이의 난징로. 중국에서 가장 번화한 이 거리의 점포들은 오늘날 대부분 원저우 출신 상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신호에서 ‘차세대 세계 수도’로 지목한 상하이의 난징로. 중국에서 가장 번화한 이 거리의 점포들은 오늘날 대부분 원저우 출신 상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거상/쟈구어씨·장쥔링 지음 김태성 옮김/476쪽 2만원 더난출판

중국에 착륙한 외계인에게 베이징(北京) 사람이 묻는다. “지구에 친척이 있는가?” 광둥(廣東) 사람이 묻는다. “외계에선 뭐가 맛있어?” 원저우(溫州) 사람이 이 외계인을 만났다. “우리가 할 만한 사업이 당신네 별에 있을까?”

이 유머에서 보듯 저장(浙江)성 원저우 사람의 상재(商才)는 중국에서도 언제나 경탄의 대상이다. 상하이(上海)에서 가장 번화한 ‘난징(南京)로’는 대부분 원저우 상인들의 점포가 장악하고 있다. 베이징, 충칭(重慶) 등 다른 주요 대도시에서도 원저우 상인들이 토착 상인과 치열한 세 다툼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원저우 사람들의 기질과 특성, 철학을 통해 그들이 가진 상재의 비결을 짚어낸다. 특히 원저우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인 ‘자립적 기질’은 최근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큰 참고가 될 만하다.

최근 중국 경제당국은 전국의 실업률을 조사하다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원저우 사람들의 실직기간이 다른 지역 사람에 비해 현저히 짧았다. 실직자들의 진로를 조사했더니 거의 예외 없이 외지로 나가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누구나 사장이 되고자 하는’ 원저우 사람들이 실직을 오히려 기회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원저우 사람들의 사업성향은 이른바 ‘사동(四動)’으로 요약된다. 즉 과감하게 고향을 떠나(계동·啓動), 친지와 친구들을 불러들이고(대동·帶動), 재빠르게 투자 결정을 내리며(충동·충動), 선풍적으로 시장을 확대한다(굉동·轟動).

이들의 첫 사업은 대개 거창하지 않다. 원저우 경제는 ‘부품경제’ ‘기생경제’라는 말로 요약된다. 의류 대신 단추, 완제품 대신 포장지, 기계 대신 부품이라는 식이다. 원저우를 대표하는 상품도 안경 구두 라이터 단추 고무밴드 등 작고 사소한 것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원저우 사람의 ‘작은 것 지향’이 쉽게 다룰 수 있는 것만 만드는 안이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틈새’를 찾아내는 정밀한 분석력과 순발력의 결과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린 1970년대 초, 한 원저우 사람이 신문을 보다가 ‘대학입시가 부활됐다’는 소식을 알고 환성을 올렸다. 그는 각 대학이 신입생을 다시 모집할 것이란 점을 미리 알아채고 학교를 찾아가 교표를 베낀 뒤 배지를 만들어 시제품을 각 학교에 보냈다. 그는 금세 거부가 됐다.

공직에서 은퇴하고 무역업을 시작한 한 원저우 사람은 알바니아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털리고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그는 의료용품 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데 주목했고 중국 의료용품을 수입해 알바니아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

그러나 원저우 사람 특유의 ‘단독플레이’로는 시장 장악력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 그래서 원저우 사람들은 시장에 진출한 뒤 고향사람들을 잇달아 참여시키고 그들 사이에는 라이벌 의식을 갖지 않으며 협조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때 ‘대동’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중국 개방 초기 원저우에서는 동네마다 상하이행 직행버스 대합실이 마련됐다는 일화, 극좌주의가 만연했던 대약진운동 기간에도 자립 성향이 강한 이곳에서는 ‘개인 생산량 책임제’가 실시됐다는 등의 사실도 흥미롭다. 원제 ‘商智’(2003년).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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