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들은 한결같이 ‘연애 잘하는 방법’에 관해 소개하고 있었어요. 마치 ‘운전면허 빨리 따는 법’이나 ‘부동산투자 성공법’을 담은 실용서처럼, 사랑을 정보와 테크닉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었지요. 이러한 연애담론이 범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사랑이나 연애와 같은 ‘사적 친밀성’의 영역이 예전에 비해 한결 중요하고 진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존 그레이 박사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아시는지요? 십여 년 전부터 젊은 여성 사이에서 필독서로 꼽혀온 이 책은 연애실용서 분야의 독보적인 베스트셀러입니다.
저자는 제목 그대로 남자와 여자를 각각 다른 별에서 온, 서로 다른 인종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남녀가 사귀는 동안 벌어지는 갖가지 오해와 갈등이 바로 남녀의 이런 생득적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지요. 상대방이 나와 다른 성별을 가진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라는 것이 이 사랑학 지침서의 교훈입니다. 책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남녀의 심리구조나 가치관, 행동양식의 차이에 대한 경험적인 통찰이, 때로는 꽤 적확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전혀 다른 존재로 남녀를 구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책은 ‘모든 남자’는 A라는 행동패턴을 보이고 ‘모든 여자’는 B라는 행동패턴을 보인다고 간주하고 있어요. ‘남자는 자기 목표를 완수하는 일을 통해 삶의 만족을 얻고, 여자는 타인과 관계 맺고 감정을 나누는 일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식이에요.
이것은 ‘남자(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부지불식간에 강화합니다. ‘모든 남자(여자)’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다른 남자(여자)’들을 완고한 정상성의 틀 너머로 배척하지요. 또한 남녀의 차이를 무조건 생래적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훈육되어졌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조하고 새로운 오해를 낳게 됩니다.
선생님, 남자와 여자는 정말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일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저마다의 가슴에 소우주를 간직한, 유일무이한 개체입니다. 한 개인의 내면을 오직 성별에 따라 구별하는 이분법은 개인의 차이를 차별의 문제로 만들뿐더러, 이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억압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다르고, 동시에 다르지 않습니다. 대신 지구상에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조금씩 다 다른 무늬와 빛깔로 만들어 가는 수억만 가지의 사랑 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사랑하며 사는 일’의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하여, 성별의 이분법을 넘어 인간 대 인간의 문제, 그리고 인간 사이의 연대와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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