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는 ‘시큐리티(security)’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시큐리티는 범죄, 병, 저축, 연금, 노후생활, 실업 등 생활을 위협하는 모든 위험에 대한 방지책을 한데 묶어 쓰는 일본식 표현이다. 현재 막연한 ‘불안’이 일본 사회 전체를 덮고 있는데 그 불안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그리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 책의 제목인 ‘안심의 파시즘’이란 막연한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거대한 권력에 의존함으로써 ‘안심’을 수중에 넣으려는 경향을 가리킨다. 저자에 의하면 파시즘은 독재자들의 강권정치만으로 탄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파시즘은 산들바람과 함께 다가오는 것’이며 자기들의 자유를 팔아넘기고 스스로 복종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사회를 성립시키는 거대한 테크놀로지-자동판매기, 휴대전화, 감시카메라-가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조작하는 점에 주목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현대인에게 휴대전화는 연락을 위한 도구만은 아니다. 휴대전화 안에는 그 사람의 중요 데이터가 들어 있다. 미국에서는 군사위성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고 기업에서는 고객의 취미, 구매정보가 입력된 시스템을 적용해 휴대전화로 고객별 맞춤광고를 보낸다. 휴대전화는 편리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편리함을 얻은 대신에 거대한 네트워크에 편입되어 하루하루의 행동을 감시당하고 규제받는다.
일본의 환락가인 신주쿠나 시부야에는 대량의 감시카메라가 작동 중이다. 방범대책의 일환이라지만 머지않은 장래에는 얼굴을 알아내는 시스템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감시카메라를 운용하는 측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이 같은 권력적 관리시스템에 저항하기보다는 이를 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자유를 포기하고 ‘안전’을 확보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안심의 파시즘을 불러내는 3가지 힘으로 사회적 다윈주의와 신자유주의, 내셔널리즘을 지목한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지상명제가 된 사회는 약자를 배려할 줄 모른다. 신자유주의에서 경쟁의 패배는 자기 책임이므로 도움의 손길을 구해선 안 된다. 반면 내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외부 위협이 등장하면 내셔널리즘이 부각된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그 좋은 예다.
이 책을 읽으면 암담한 느낌이 밀려온다. 그러나 저자는 어떠한 복종을 받아들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유를 갈구하는 정신이 꿈틀거리고 있을 거라는 데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그 희망을 함께 나눠 갖고 싶다. 원제 ‘安心のファシズム-支配 されたがる人びと’. - 끝 -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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