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주장대로 서양 선교사의 파견은 ‘정치적인 의도’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선교사들이 실제로 한 일은 정치적인 것보다 인류애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이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해 갈 때 미국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세계정세를 일깨워 주고 신지식을 전해주며 국권 수호의 길을 찾도록 조력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을 설립하고 이 땅에 묻힌 호러스 언더우드(원두우) 박사,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제중원(濟衆院)을 연 호러스 뉴턴 알렌과 올리버 R 에비슨의 희생적인 삶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더우드가(家)의 4세인 원한광 박사는 한국에 묻힌 그의 선대(先代)들과는 달리 여생을 미국에서 보내기 위해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는 근자의 소식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그는 한국을 떠나는 게 개인 사정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엊그제 그가 행한 한국에서의 ‘마지막 강연’에는 우리 사회의 ‘쇄국정신’과 ‘반미감정’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 있는 것으로 들렸다.
이는 서강대를 설립한 미국 예수회 신부들에게도 해당되는 듯하다. 서강대의 급속한 성장은 1960년대 초 미국의 젊은 예수회 신부들이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개흙밭, 신촌 끝자락에서 희생적인 노력으로 이룩한 결과였다. 서강대는 당시만 해도 일제 식민지 교육방식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해 침체에 빠져 있던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존 P 데일리 신부를 비롯해 서강대를 설립하고 발전시킨 주역들은 선대 언더우드가 사람들처럼 한국에 묻히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났다. 대학의 ‘한국화’ 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으나 아쉬움은 남는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원한광 박사가 지적했듯이 21세기 들어 새롭게 나타난 ‘쇄국적 분위기’가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지한파(知韓派) 미국인을 잃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을 사랑할 능력 있는 인재들을 더 이상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미국 등 해외에서 한국문화의 실체를 알렸던 고급 두뇌 중에는 언더우드가 사람들처럼 오랜 세월을 한국에서 보내며 우리와 같이 호흡한 경험을 가진 미국인 신부 선교사, 그리고 평화봉사단 출신들이 많았다.
우리 정부는 한국문화의 세계화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지한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자해 왔다. 그러나 그런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과거 한국에서 희생적인 삶을 살았던 외국 선교사들이 이룩한 업적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하다. 정치학자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한국에 묻힌 미국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의 첨병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신이 불완전하게 창조한 세상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귀한 존재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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