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67>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9월 29일 18시 59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위표(魏豹)는 틀림없이 패왕이 서위왕(西魏王)으로 세웠으나 반드시 그의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패왕이 제멋대로 천하를 갈라주는 바람에 위표 또한 적지 않은 불평을 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량이 한왕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지난날 임제성에서 장함에게 몰린 위왕 구(咎)가 백성들을 구하고자 항복하고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죽은 뒤 위표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초나라로 달아났다. 그때 초 회왕(懷王)은 송의(宋義)의 뒷받침으로 왕다운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위표가 항복해오자 수천명의 군사를 딸려주며 다시 위나라 땅을 경략하게 했다.

위표는 힘을 내어 위나라 땅의 성 스무남은개를 함락시키고 때마침 장함의 항복을 받아낸 상장군 항우를 찾아갔다. 그전에 이미 송의를 죽여 회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항우는 그런 위표를 위왕(魏王)으로 봉하고 자신을 따르게 했다. 이에 위표는 날래고 씩씩한 병사들만 골라 데리고 항우를 따라 함곡관으로 들어가 공을 세웠다.

그런데 패왕이 된 항우는 다시 분봉(分封)에서 위표의 불평과 원망을 샀다. 원래 위표의 근거인 양(梁) 땅을 자신의 서초(西楚)에 넣고, 위표에게는 하동(河東)을 주며 서위왕으로 평양(平陽)에 도읍하게 한 때문이었다.

한왕도 그걸 알고 있었으나 여전히 시치미를 떼며 다시 물었다.

“하동이 양보다 더 좁지 않고 사람이 적거나 땅이 메마르지도 않거늘 어찌 위표가 항왕을 원망한단 말이오?”

그리고 기어이 한신까지 끌어들여 왜 그런가를 설명하게 한 뒤에야 하수(河水) 건너기를 허락했다.

임진관을 나와 하수를 건넌 한의 대군은 기세 좋게 하동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런데 하동에 들어선 다음날이었다. 척후로 몇 기(騎)를 이끌고 나갔던 기장(騎將) 하나가 돌아와 급하게 알렸다.

“30리 앞에서 서위왕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군사는 3만을 넘지 않아 보이나 갑주와 기치가 여간 삼엄하지 않습니다. 위표가 전력을 들어 맞서려 나온 게 틀림없습니다.”

그 말에 한신이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이제 우리가 항복을 권하는 사자를 평양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언제 벌써 위표가 대군을 이끌고 내려왔단 말이냐? 혹시 무얼 잘못 본 것은 아니냐?”

“제 눈으로 똑똑히 서위왕의 기치를 읽었습니다. 은빛 갑옷을 입고 백마에 높이 올라 앞서 오는 그 모습도 틀림없이 지난날 관중에서 먼빛으로 본적이 있는 서위왕 위표였습니다.”

그 말에 한신은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윽고 가만히 이를 사려 물더니 한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전군을 이끌고 제 발로 마중을 나왔다니 한 싸움으로 짓뭉개 항복을 받아내는 것도 동북을 평정하는 양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장수들을 모아 싸울 채비를 하게 했다. 한왕도 일이 예상과 다르게 벌어지는 데 놀라면서도 잠자코 한신이 하는 대로 지켜보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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