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은 없는가. 한꺼번에 모든 게 해결될 수는 없다. 슬기가 필요하다.
사실상 개발독재 덕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살 수 있었을까. 그러나 또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오늘의 좌익은 모두 그들이 키운 게 아닌가. 운동권으로 몰려 영창에 드나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빨갱이로 몰려 가정이 파괴되고 핏덩이를 내던진 채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반정부 인물로 낙인찍혀 도망자 신세가 돼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 산과 들을 숨어 다니며 계곡마다에 뿌려댔던 외마디 소리의 의미를 저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들의 핏빛어린 염원은 드디어 세상을 바꾸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꿀 줄만 알았지 운영은 확실히 서투른 것 같다. 그들은 계속 적을 만들고 있다. 원한을 사는 말을 예사로 한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그들도 바뀌어야 한다. 모두를 안아 들일 수는 없는가. 모자라면 배워가면서 겸손해라. 경제가 무엇인지, 외교가 무엇인지, 안보가 무엇인지 심사숙고해라. 극단을 버려라. 중도로 가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듯하지만 영원한 산이 아니고 영원한 물이 아니다. 변해간다. 부정을 통한 긍정의 미학으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임을 보라.
이 세상에 원수는 없다. 세월이 흐르고 보면 모두가 다 나의 스승이다. 탁월한 지도자란 백성들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를 때 그를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 성현의 말씀이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성장과정이 가파른 사람이 대체로 말과 행동이 충동적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신중해야 한다.
서울 강남에서 동네북처럼 산다. 강남에 사는 것이 무슨 죄인가. 왜 불필요한 원한을 사는가. 반만년 역사를 살아오며 얼마나 찢기고 밟혔던가. 시대의 아픔을 서로 어루만지자. 처절한 원한의 굴레를 벗어던지자. 세월은 흐른다. 단견으로 그르치지 말자. 가능한 한 중도의 길로 가자. 그리고 모든 원한을 푸는 마음이 되자. ‘해원결진언(解怨結眞言·원한과 맺힘을 풀어달라고 비는 주문)’이라도 크게 외치고픈 심정이다. “옴 삼다라 가다약 사바하, 옴 삼다라 가다약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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