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하종오/지 살자고 하는 짓

  • 입력 2004년 10월 1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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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에서 삐끗해 금 간 다리뼈 겨우 붙으니

늙은 어머니는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마당가로 가

참나무 아래서 도토리 주워 껍질 까다가

막내아들이 쉬라고 하면 내뱉었다

놔둬라이, 뼈에 숭숭 드나드는 바람 달래는 거여

장가 못 든 쉰줄 막내아들이

홀로 된 여든줄 어머니 모시고 사는데

막내아들이 검정콩 베어다 마당 한복판에 쌓아놓으면

늙은 어머니는 참나무 가지로 타닥타닥 두드려 털고

막내아들이 멀리 튄 콩 주워오면 소리질렀다

놔둬라이, 한구석에 묻혀서 명년까지 있고 싶은 거여

막내아들이 갈아입힌 속옷에 새물내 나서

늙은 어머니는 코 킁킁거리며 새물새물 웃다가

막내아들이 겉옷에 붙은 풀씨 뜯어내면 중얼거렸다

놔둬라이, 혼자 못 가는 곳에 같이 가자는 거 아니겠냐

늙은 어머니가 해거름에 집 안으로 들 적에

이웃집 수캐가 어슬렁어슬렁 대문 먼저 넘어서

암캐에게 올라타려고 낑낑거리는 꼴이 민망해서

막내아들이 콩줄기 거머쥐고 후려치면 말렸다

놔둬라이, 지들 딴엔 찬 밤 길어지니 옆구리 시린 게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시집 ‘반대쪽 천국’(문학동네) 중에서

‘놔둬라이’.

누가 제 한평생 터득한 삶의 지혜를 저토록 압축할 수 있을까. 고승의 게송 치고도 너무 짧은 한 마디에 저 어머니의 생애와 바꾼 깨침이 꼬박 들어 있다. 고작해야 마당가에서 도토리 주워 까며, 참나무 가지로 콩섶이나 두들기며 던지는 말이지만 설늙은 아들과 주고받는 문답이 가슴 서늘하고 뭉클하다.

달아난 검정콩알 하나, 풀씨 한 알의 안위를 걱정하고, 수캐의 욕정이 생명의 바탕임을 안다. ‘뼈에 숭숭 드는 바람 달래’야 하는 낡은 몸이지만, 저 달관과 따스함과 너그러움의 대가라면 ‘늙는다는 것’도 조금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저 어머니를 가르친 평생 경전은 무엇이었을까. 먹물은커녕 호미날과 괭이날로 줄 그으며 읽던 논두렁 밭두렁이었을 것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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