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시절을 보냈던 70년대 초, 당시의 연극이나 음악회란 질적인 완성도를 말하기 앞서 그 숫자에 있어서도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그랬기에 당시 서울 명동 국립극장이나 광화문의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또는 이화여대 강당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기대로 가득찼던 것 같다. 당시 공연 하나하나가 안겨준 감동과 추억은 지금도 나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고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향수를 자아내고 있다.
그 시절 보았던 프레빈과 런던 심포니, 아바도와 비엔나 필, 테발디와 코렐리 등 쟁쟁한 클래식 공연도 압권이었지만 다른 장르의 공연들 역시 기억에 남는다. 감미로운 연주를 선보인 빌리본 악단, 폴 모리아 악단, 그리고 ‘벤처스’ 공연. 이 공연에 동행했던 무명 여가수가 불렀던 모리스 앨버트의 ‘필링’은 아직도 회상 속에서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음악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무대 뒤편에도 자주 들어가 보았다. 명색이 공연장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무대 설비는 너무나 열악했으며 분장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요즘에는 분장실에 피아노가 있어 연습이라도 하면서 긴장감을 달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니 연주를 앞둔 피아니스트는 무대 위에 오르기 두 시간 전부터 입술을 바짝바짝 태우며 무릎을 건반삼아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많던 공연 중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것은 1970년 6월, 조지 셀이 지휘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그날은 제과회사에서 ‘부라보콘’ 출시기념으로 입장하는 모든 관람객에게 부라보콘을 나누어 주었다. ‘공연장에서 아이스크림을?’이라며 펄쩍 뛸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판촉행사를 용인하는 여유가 있었다. 자리에 앉아 부라보콘을 좋아라 먹던 나는 공연 시작을 알리는 애국가 연주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런데 애국가가 끝나니 곧장 미국 국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반 밖에 먹지 않은 부라보콘은 이윽고 손에서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크림과 무대를 번갈아 보며 빨리 국가 연주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그 시간이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지금도 로켓포와도 같았던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강렬한 음향과 함께 부라보콘의 달콤한 맛이 생각나 입맛을 다시곤 한다.
● 김용배씨는?
△1954년생 △197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79년 서울대 대학원 석사 (피아노 전공) △1982년 버지니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영 아티스트 콩쿠르 우승 △미국 가톨릭대 대학원 피아노 박사과정 졸업 △1990년 추계예대 피아노과 교수 △2004년 예술의 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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