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더글러스 맥아더’…‘포장된 전쟁영웅’의 진실

  • 입력 2004년 10월 8일 1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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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복장규정에 어긋나는 말채찍과 스웨터, 긴 머플러로 동료 장교와 자신을 확연히 차별화한 맥아더는 제2차 세계대전에선 선글라스에 옥수수대 담배파이프를 문 모습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오른쪽 아래는 1944년 10월 20일 레이테 섬에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사진제공 이매진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복장규정에 어긋나는 말채찍과 스웨터, 긴 머플러로 동료 장교와 자신을 확연히 차별화한 맥아더는 제2차 세계대전에선 선글라스에 옥수수대 담배파이프를 문 모습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오른쪽 아래는 1944년 10월 20일 레이테 섬에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사진제공 이매진

◇더글러스 맥아더/마이클 샬러 지음 유강은 옮김/516쪽 2만원 이매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1880∼1964)만큼 20세기 미국에서 군사적 성공을 이룩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며 미군들에겐 살아생전 최고의 훈장이라는 은성무공훈장을 무려 일곱 차례나 받았고, 미 육군 역사상 넷밖에 없는 5성 장군이다. 그는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공산화 위기에 처했던 한국을 극적으로 구해낸 영웅이다.

검은 선글라스와 파이프 담배를 문 그의 조각 같은 얼굴은 말채찍과 긴 군화로 상징되는 조지 패튼의 패션을 능가했고,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물론 적국이었던 일본에서도 ‘신과 같은 존경을 받은’ 그의 카리스마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압도했다.

그는 여러 차례 백악관행을 꿈꿨지만 결국 그것은 4성 장군 시절 그의 참모로 소령에 불과했던 아이젠하워의 차지가 됐다. 1951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연합군 총사령관에서 해임된 그가 미국으로 귀환했을 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던 것에 비춰보면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이 책은 맥아더에 대한 신화를 철저히 벗겨내는 방식으로 그 의문에 답한다. 저자는 20세기 군신(軍神)의 자리에 앉은 그가 실은 억세게 ‘운 좋은 군인’(Soldier of Fortune·용병을 뜻하기도 한다)에 불과하다는 점을 폭로한다.

맥아더가 군대에서 출세의 기반을 마련한 데는 필리핀 군정총독을 지냈으며 육군 참모총장 물망에까지 올랐던 아버지의 후광과 어머니의 유별난 치맛바람이 한몫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군인이 돼야 한다는 어머니의 강압은 그를 마마보이로 몰고 갔다. 마흔이 넘어 애가 둘 달린 이혼녀와 결혼한 일은 어머니의 지지를 받지 못하다가 파국을 맞았고, 이후 서른 살이나 어린 필리핀계 혼혈여성과의 애정행각 역시 어머니 눈총이 두려워 돈으로 마무리됐다.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한 그의 군사적 성공은 대부분 적군을 압도하는 군사적 우위 속에 이뤄진 것이었다. 군사전략가로서 그는 실패자였다. 그는 일본의 진주만 침공 소식을 듣고도 판단착오로 일본 공습 타이밍을 놓쳐 미국 본토를 제외하고 최대의 공군력을 자랑하던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필리핀 전선에서 그는 자신의 패배가 워싱턴 관료들의 배신 때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보도자료를 작성하느라 병사들로부터 ‘땅굴쟁이 더그’라는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애치슨라인이 발표되기 전 한국을 미국 방위선에서 제외한 것도, 북한의 남침소식을 듣고 “한손을 뒤로 묶고서도 처리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다 전쟁 초기 미군의 패배를 자초한 것도 그였다. 중공군이 참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가 혼쭐이 나자 이번엔 핵무기로 중국 본토를 공격해도 세계대전은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진짜 탁월한 능력은 패배마저 승리로 포장할 줄 아는 홍보 능력이었다. 필리핀 레이테 섬 상륙작전 이후 바닷물에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상륙하는 모습은 그의 섬세한 연출 장면이었고,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표현도 1938년 이래 그가 애용한 레퍼토리였다.

미국은 아시아의 패권 장악을 위해 이를 묵인하고 그의 이미지를 활용했다. 그러나 그가 워싱턴을 향해 도전했을 때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젠하워가 갈리아(유럽)를 장악한 카이사르였다면, 맥아더는 소아시아의 패권을 잡았지만 카이사르에게 패배했던 폼페이우스였던 셈이다.

원제 ‘Douglas MacArthur’(1990년).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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