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이름 없는 너에게’

  • 입력 2004년 10월 8일 1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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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너에게/벌리 도허티 글 김진이 그림 장영희 옮김/298쪽 1만2000원 창비(고등 1∼3년)

당신의 10대 자녀가 임신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혹은 청소년인 당신이 임신했다면?

이 책에서 헬렌의 엄마는 “몇 번이나 그 짓을 했니. 도대체?”라며 화를 낸다. 크리스의 아빠 역시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라고 크리스를 비난한다.

영국의 대도시 고등학교 졸업반인 헬렌과 크리스는 단 한번의 사랑으로 임신을 하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그들이 처한 상황은 세계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잔뜩 겁에 질린 작은 맥박’ 정도로 아기의 존재를 부정하던 헬렌은 이 ‘이름 없는’ 존재를 향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름 없는 너에게(Dear Nobody)’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편지형식의 글은 뱃속의 아기와 자기 자신을 향한 고백이자 일기이다.

헬렌의 임신 소식에 크리스는 결혼을 떠올리며 ‘단칸방. 내가 아버지보다 더 나이든 중년이 될 때까지 매달 부어야 하는 주택부금…다시 태어나면 모든 것을 바로 돌릴 수 있을까?’ 하고 겁을 낸다.

이 작품은 크리스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월부터 대학에 들어간 직후인 11월까지 회상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크리스의 회상과 헬렌의 편지가 교차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가족이야기로 발전한다. 헬렌의 임신으로 크리스는 어린시절 가족을 떠난 엄마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찾고 헬렌은 엄마가 사생아였다는 비밀을 알고 엄마와 외할머니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때로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다”며 “이런 소설이 그런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떠나게 될 정신적 여행에서 무엇을 소중하게 지켜갈지를 찾기 바란다는 얘기다.

크리스가 어릴 적 떠나간 엄마를 이해하며 삶의 진로를 결정할 용기를 갖게 되고 헬렌이 생명의 소중함과 가족사랑을 배우듯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번역연습’이란 강의의 텍스트로 사용한 서강대 장영희 교수(영문학)는 “헬렌과 크리스가 학교와 가족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생활하다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는 과정을 다룬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평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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