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정재환-아나운서 이현경씨 ‘우리말 다듬기’ 대담

  • 입력 2004년 10월 8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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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환씨(왼쪽)와 이현경씨는 “우리말을 사랑한다면 사전을 가까이 두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정재환씨(왼쪽)와 이현경씨는 “우리말을 사랑한다면 사전을 가까이 두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한글날(9일)을 앞둔 7일 ㅱ글문화연대 부대표인 방송인 정재환씨(43)와 SBS의 우리말 순화위원인 이현경 아나운서(31)가 외래어, 외국어, 잘못 쓰는 우리말들을 어떻게 잘 ‘다듬어’ 쓸 것인가에 관해 머리를 맞대었다. 두 사람은 국립국어연구원과 동아일보가 누리꾼(네티즌)들의 참여로 7월부터 진행 중인 ‘모두가 함께 하는 우리말 다듬기’에 대해 “지금은 낯설지만 다듬은 말들이 곧 익숙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 외국어보다 우리말이 어색하다?

▽정재환=1999년 책을 내면서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 표준어라고 말하고 방송에서도 적극 소개한 것 때문에 제가 얼마나 팬들을 많이 잃었는지 몰라요. ‘자장면’이라고 하면 도대체 거기서 무슨 맛이 느껴지느냐고들 항의하시죠.

▽이현경=사실 잘못된 것이라 해도 이미 익숙해져 있는 언어습관을 거스른다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말 다듬기’에서 ‘이모티콘’을 ‘그림말’이라고 다듬은 건 참 재치 있더군요. 다듬은 말들이 이런 경쟁력을 갖게 된다면 일부러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널리 쓰이게 되지 않을까요.

▽정=‘우리말 다듬기’ 성공의 열쇠는 얼마나 자주 쓰는가에 있어요. 웰빙(well-being) 대신 ‘참살이’라고 정했으면 신문 방송 등에서 앞장서서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말을 공부하는 자세도 중요하지요. 한국인이니 한국말은 나도 전문가라는 식의 오만함이 우리말을 망칩니다. ‘통틀어’를 ‘통털어’로, ‘하마터면’을 ‘하마트면’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발음하면서도 사전 한번 들춰 보는 사람이 드물어요.

● 우리말에 대한 자신감이 중요

▽이=그래도 인터넷 같은 새로운 공간에서 좋은 우리말 쓰기의 사례가 생긴다는 건 참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말이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누리꾼들이 ‘방가방가(반가워요)’ 같은 말들로 우리말을 파괴한다고 비판받아 왔지만 ‘우리말 다듬기’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널리 퍼뜨리는 것도 누리꾼들이죠.

▽정=인터넷 주소의 @를 가리킬 때 ‘앳(at)’ 대신 ‘골뱅이’란 말을 쓰게 된 건 사실 기적입니다. 아마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어려운 사례일 겁니다. 제가 컴퓨터통신 1세대에 속하는데, 초창기 몇몇 누리꾼들이 골뱅이로 쓸 거냐, 올챙이로 할 거냐 갑론을박할 때만 해도 이렇게 일상적인 단어가 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이=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최근 결성된 한국어 동아리들이 한류(韓流) 열풍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자주 발견합니다. 해외에서 한국문화가 주목받다 보니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나 자부심도 커진 거죠.

▽정=한국어에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2002 한일월드컵 때 아쉬웠던 게 한국응원팀 ‘붉은 악마’가 ‘red devil’로 국제사회에 소개된 겁니다. 중국 응원단 추미(球迷)는 ‘공에 미친 사람들’이란 뜻인데 중국어 그대로 세계에 알려졌잖아요. 우리도 ‘붉은 악마’라는 한국어를 알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이=아직까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한국어가 ‘화병(火病)’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많아요. ‘정(情)’처럼 긍정적인 한국문화를 담은 우리말들이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우리말 다듬기 어떻게 진행되나▼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www.malteo.net)에 매주 다듬을 외래어나 외국어를 게시해 1주일간 제안을 받는다. 이번 주 다듬을 말은 ‘유비쿼터스(ubiquitous)’. 제안 중 4, 5건을 국립국어연구원 전문가들이 골라 이를 다시 인터넷 투표에 부친 뒤 최다 득표를 한 말을‘다듬은 말’로 확정한다. 지금까지 가장 제안이 많았던 것은 ‘아자’로 다듬어진 ‘파이팅’으로 800여건. ‘다듬은 말’이 사전에 등재되면 최초 제안자가 ‘말밑(어원·語源)’으로 소개되는 영광을 누린다.

어떤말 다듬었나
다듬기 전 외래어·외국어다듬은 말
리플(reply)댓글
웰빙(well-being)참살이
스크린도어(screen door)안전문
스팸메일(spam mail)쓰레기편지
이모티콘(emoticon)그림말
올인(all-in) 다걸기
콘텐츠(contents)꾸림정보
파이팅(fighting)아자
네티즌(netizen)누리꾼
무빙워크(moving walk)자동길
슬로푸드(slow food)여유식
방카슈랑스(bancassurance)은행연계보험

정리=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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