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은 558돌 한글날… ‘순 우리말 이름 세대’의 현주소

  • 입력 2004년 10월 8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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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신아름씨(22·여)는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것에 대해 요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어렸을 때는 ‘예쁘고 튀는’ 이름에 만족스러웠지만 사회 진출을 눈앞에 두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필요할 때를 대비해 아예 내 이름의 뜻과 상관없는 ‘아름다울 아(아)’에 ‘늠름할 름(凜)’자를 준비했다”고 털어놨다.

9일은 훈민정음 반포 558돌을 맞는 한글날. 그러나 순우리말로 된 한글이름 때문에 불편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한글날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관련 단체 등에서 추정하는 한글이름 사용자는 약 250만명. 이 중 많은 사람이 부르기 쉽고 아름다운 한글이름에 자부심을 갖고 하지만 부르기 어색하거나 지나치게 유아적인 이름을 가진 일부 사람은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자녀들에게 한글이름을 지어주는 움직임은 1966년 ‘고운이름 자랑하기’ 등 민간 차원의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198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 이 시기에 태어난 한글이름 세대가 성인이 돼가면서 한자 없는 이름은 가벼워 보인다는 편견에 시달리거나 주변에서 놀림을 받기도 한다. 일상에서의 불편도 만만치 않다.

한글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한 인터넷 카페에는 “내 이름을 ‘닉네임’으로 착각한 회사에서 ID를 정지시켜버렸다. 따져 물었더니 회사에서 ‘실명을 알려주면 ID를 복구해 주겠다’고 대답해 황당했다”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또 ‘복’, ‘퓽’ 등 몇몇 글자는 현재 정부의 전산망으로는 표기가 불가능해 이런 글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주민등록증에는 종종 실명과 다른 이름이 표기돼 있다.

대법원 호적계 관계자는 “이런 불편 때문에 한글이름 세대 중 많은 사람이 성인이 되면서 개명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글학회 유운상 국장은 “오히려 한자이름을 쓰는 남자 형제들의 경우 항렬을 고집하다 보면 더 어색한 이름이 나오는 경우를 많이 본다”며 “한글이름이 어른에게는 안 어울린다는 사회적 편견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글이름보급회인 ‘이름 사랑’의 배우리 대표는 “우리 사회의 편견 때문에 아름다운 한글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한글이름이 중흥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장려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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