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굉필-정여창 서거 500주기…性理學의 두 巨人 다시 본다

  • 입력 2004년 10월 10일 18시 14분


경남 거창군에 위치한 모현정은 같은 영남 출신으로 김종직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며 도학사상의 기초를 닦은 한훤당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이 함께 강학을 펼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사진제공 서흥김씨종친회
경남 거창군에 위치한 모현정은 같은 영남 출신으로 김종직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며 도학사상의 기초를 닦은 한훤당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이 함께 강학을 펼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사진제공 서흥김씨종친회
올해는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1454∼1504)과 일두 정여창(一두 鄭汝昌·1450∼1504)이 나란히 서거 500주기를 맞는 해다. 조선 사림의 조종으로 꼽히는 김종직(金宗直)의 제자였던 두 사람은 연산군 시절 사화로 목숨을 잃었지만 광해군 시절 나란히 문묘에 배향되며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추앙됐다.

동방오현은 조선 성리학자 중에서도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에 배향된 다섯 사람을 말하는데 두 사람 외에도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있다.

이 같은 사실에서도 조선 성리학계에서 한훤당과 일두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지만 정작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 탄압 끝에 목숨을 잃는 바람에 저작들이 대부분 불타거나 유실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문제가 된 무오사화(1498년) 때 유배형에 처해졌다. 1504년 4월 일두는 함경도 유배지에서 숨을 거뒀고, 한훤당은 같은 해 10월 갑자사화로 전남 순천의 유배지에서 처형됐다. 한훤당은 유배지에서 조광조라는 걸출한 제자를 키워냈지만 본관인 서흥 김씨의 후손은 적었다. 두 학자의 유문과 행적을 모으고 정리한 정구(鄭逑)도 한훤당의 외손이었다.

그러나 올해 500주기를 맞으면서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6월 ‘일두 정여창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논문집이 발간된 데 이어 13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한훤당 추모학술대회가 열린다. 23일 대구교육대 상록관에서는 한훤당에 관한 또 다른 학술대회와 토론회가 개최된다.

김태영 경희대 명예교수는 13일 발표하는 ‘한훤당의 왕도사상’이란 논문에서 “조선 사림은 초기에 문장과 절의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한훤당에 이르러 최초로 독자적 도학(道學)을 진화시킨 위상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일두는 그런 한훤당과 항상 병칭된 도학자였다. 최영성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우리 유학사에서 퇴계와 율곡, 율곡과 우계(성혼), 서애(유성룡)와 학봉(김성일), 우암(송시열)과 동춘당(송준길)처럼 일대를 풍미하며 병칭된 유학자 중에 한·두(寒·두)가 가장 첫머리에 오른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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