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의 해체주의는 플라톤 이후 이성(理性)주의에 얽매인 서양철학과 형이상학을 비판했다. 서구 이성주의 전통에 최초로 반기를 든 니체의 철학은 하이데거를 거쳐 프랑스에서 미셸 푸코(1926∼1984), 질 들뢰즈(1925∼1995), 그리고 데리다를 만나면서 만개했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의 죽음은 니체사상의 중흥을 이끌었던 프랑스 현대철학의 삼총사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뜻한다.
1930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데리다는 파리 고등사범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부터 이 학교에서 철학사를 가르쳤다. 프랑스와 미국의 대학을 오가며 후학을 양성했고 1980년 소르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 국제 철학학교를 세워 초대 교장에 취임하는 등 철학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러나 1981년 체코 지식인을 지원하다 체코 당국에 구금당하는가 하면 동성애자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등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인권옹호를 위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가 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67년 ‘글쓰기와 차이’,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목소리와 현상’ 등의 3부작을 통해 구조주의의 현상과 본질의 이분법적 논리를 비판하면서부터. 또 1972년 ‘철학의 여백’, ‘소종’, ‘입장들’을 출간하면서 서양철학이 구축해 놓은 로고스 중심주의의 토대를 해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양철학은 불완전한 이 세계의 배후에 완전하고 무한한 근원이 놓여있으며, 이 배후세계의 진실과 지식은 이성과 언어(로고스)로 이해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데리다는 로고스는 세계와 무관한 독자적 체계이며, 그것으로 이뤄진 텍스트를 쓴 저자와 이를 읽는 독자 사이에는 차이와 단절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성의 신화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유럽에서는 홀대받았다. 상대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이라는 이유로 ‘현대판 소피스트’라는 비판을 들었다. 복잡한 사유를 풀어가는 그의 난해한 문체에 대해서는 ‘지적 사기꾼’이라는 비난이 꼬리를 물었다. 1980년 파리10대학에서 폴 리쾨르의 후임교수에 낙마한 것도, 1992년 케임브리지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에서 교수 찬반투표까지 벌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반면 미국에서 그는 환영받았다. 그의 영향으로 예일학파 등 여러 학문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또 그의 해체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탈역사주의 등 수많은 현대적 사상조류에 물줄기를 제공하는 수원지가 되기도 했다. 문학 건축 영화 등 다양한 현대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들어 데리다의 저작이 상당수 번역돼 ‘그라마톨로지’(김성도 옮김·민음사), ‘마르크스의 유령들’(양운덕 옮김·한빛) 등이 나왔다. 또 ‘데리다 읽기’(이성원 엮음), ‘해체론 시대의 철학’(김상환 지음·이상 문학과지성사) 등의 해설서도 출간됐다.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데리다는 국내에선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중요한 영감을 불어넣었고 가장 튼튼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면서 “그 풍부한 지적 잠재력에 대한 국내의 탐구는 앞으로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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