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씩 진행되는 숲속학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르다보면 “힘들다…. 오늘 안 온 녀석들도 있겠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약속장소엔 언제나 나보다 먼저 아이들이 와 있습니다.
새집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주변을 돌아다니기만 합니다. 한두 명이 주변에 있는 풀들을 모읍니다. 너도 나도 풀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집을 지을 장소를 찾아 이곳저곳 꼼꼼하게 물색하고, 정성껏 풀을 비비고 발로 밟기도 하지요.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인 듯 합니다. 그런 뒤 잘 말아 둥지를 틉니다.
물색해 놓았던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둥지를 올리고, 눈에 띄지 않게 위장까지 하더군요. 어떤 아이들은 땅을 파기도 하고, 쓰러진 나무를 타고 올라가 좀 더 높은 곳에 집을 올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처음의 막막함은 사라지고, 어느덧 아이들은 성미산의 뱁새가 되어 날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집을 보며 들뜬 마음에 둥지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아기 새를 지키는 어미 새처럼. 이 순간 내겐 더 이상 산과 아이들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새나 거미처럼 이 아이들도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사람도 처음엔 자연이었다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립니다. 우리 안에 꼭꼭 숨어 있던 자연성은 자연을 만날수록 서서히 밖으로 나오지요. 처음 산에 온 아이들은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할 줄만 압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산에 있는 나무와 버섯과 거미들과 친구가 되지요. 어른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람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밥은 먹으면서 벼를 모르고, 밤을 좋아하면서 밤나무는 모릅니다. 가로수로 그 흔한 은행나무의 열매가 포장마차에서 파는 그 고소한 은행인지 도시의 아이들은 알 기회가 없습니다. 따는 사람 없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도시의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보면 민망하고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성미산에는 밤나무가 있습니다. 실하게 달리지도 않은 그 나무 아래 아이들과 빙 둘러섭니다. 신발을 던져봅니다. 몇 송이 떨어지자 가시에 찔려가며 껍질을 벗겨냅니다. 먹을 만한 것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르지요. 그리곤 다른 곳에 밤나무가 없는지 눈이 커집니다. 이제 밤나무만큼은 확실히 알게 된 셈입니다.
자연은 감상이나 학습, 경외의 대상만은 아닙니다. 자연은 우리 자신이고 이웃이지요.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놀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더구나 자연과 놀 줄 알아야 하지요. 밤나무를 좋아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은 밤을 사먹은 아이가 아니라 따먹은 아이이기에.
아이들의 손은 조심스럽거나 부드럽지가 못합니다. 그 거친 손놀림에 자연은 자주 부러지고, 꺾이는 상처를 입기도 하지요. 하지만 언제나 다시 아이들을 부르고 품을 열어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이들의 몸을 풀빛으로 물들이는 시작임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은주 성미산 숲속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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