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교수는 조선 망국의 이유를 부정부패와 사대주의, 당파싸움 등 우리 민족의 결점에서 찾은 식민사관과 그 반발로 일제의 침략이라는 외부 원인을 더 강조한 민족사관을 모두 비판했다. 역사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자기성찰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런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조선의 망국 원인을 네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문명사적 전환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지성의 빈곤’이다. 서양문물을 배척한 위정척사론은 윤리의 기준을 적용해 정치를 판단하는 ‘정치의 윤리화’라는 오류에 빠졌고, 서양문명을 추종한 문명개화론은 자주독립이라는 목적보다 문명개화라는 수단을 우선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둘은 결국 이분법적 인식구조에 갇혀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찬반의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의 반(反)지성주의와 일맥상통한다.
둘째, ‘외세 활용의 실패’다. 당대 조선의 위정자들은 소국의식과 변방의식에 사로잡혀 서구열강이 개항을 요구하자 “조선은 중국의 신하국이므로 중국의 허락 없이 개항할 수 없다”며 외교정책의 결정권을 중국에 미루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다. 또 임오군란(1882년) 이후 위안스카이(袁世凱)라는 총독 아래 중국 청나라의 반식민지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동학농민운동(1894년)이 발생하자 일본군의 자동개입을 알면서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청군의 파병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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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국내 역량 결집의 실패’다. 이는 왕권을 제한하는 조선의 신권(臣權)정치체제와 2, 3일이 멀다 하고 벼슬을 바꿀 정도로 심각한 매관매직, 그리고 조정정책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 등 정치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치적 분열과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의 부재였다. 이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과거사 문제나 국가보안법 문제 등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갈등을 조정 통합하지 못하고 어느 한편의 입장에 서 버림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된다.
넷째, ‘제도화의 실패’다. 국민통합의 제도로서 의회 도입의 불발, 지도층의 근시안적 식견으로 부국강병을 위한 제도개혁의 지체, 인재양성 제도의 부실 등이다.
여기서 자주의 개념이 왜 등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목표와 수단을 분명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국가를 위기상황에서 구해 낼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오늘날 얻기 위해서다. 정 교수는 “자주는 우리의 안전과 평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절차적, 수단적, 보조적 개념이며 그 의도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개념”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자주의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자주외교를 뒷받침하는 국력을 키우는 것이요, 국제사회의 현실과 명분을 조화시킬 수 있는 외교력을 갖추는 것이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갈등을 조정하고 국론을 통합하는 정치력을 세워야 한다는 게 정 교수의 결론이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정치력의 부재에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가치관에서 정치를 구해 내고 타협과 조정의 기술을 통해 국론을 통합해 내는 정치력이 과연 한국에 있습니까?”
정용화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40)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유길준의 정치사상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초빙연구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박사후과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문명의 정치사상:유길준과 근대 한국’, ‘21세기 한반도 백년대계’(공저)가 있다. 주요 논문에는 ‘사대·중화질서 관념의 해체과정’, ‘전환기 자주외교의 개념과 조건’ 등이 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제2강서 쏟아진 질문들▼
특히 초중고교생 등 청소년 청중은 질의응답을 주도하는 등 한국 근현대사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일부 청소년은 2시간 동안의 강연이 끝난 뒤에도 강사인 정용화 교수에게 삼삼오오 몰려들어 미처 풀지 못한 궁금증을 해소하느라 계속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30분간 ‘과외 특강’이 펼쳐지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근대국가의 과제가 부국강병이라고 했는데 대원군의 개혁정책도 부국강병책으로 볼 수 있지 않는가.(최석은·잠실고 2학년)
“대원군은 몇몇 문벌과 가문에 의해 사유화된 조선의 정치를 조선왕조의 이상정치로 복귀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보수적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세계정세의 변화를 읽고 조선을 거기에 맞게 능동적으로 개혁하는 진보적 개혁에 나서지는 못했다.” ―구한말 지성의 빈곤을 지적했는데 위정척사파와 문명개화파의 이분법을 극복한 지식인은 없었는가.(김유준·경희대 3학년)
“‘수구당은 개화의 원수요, 개화당은 개화의 죄인’이라고 비판한 유길준이 있었다. 유길준은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결합해 보다 상위의 문명을 설정, ‘조선식 근대화’를 모색했다. 최근 국내학자들 사이에 유길준의 ‘서유견문’ 읽기 붐이 일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책략’이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을 가까이 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이지환·백마초 6학년)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은 결국 남하정책에 나선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여야겠다는 청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한국은 이처럼 남의 눈으로만 세계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한국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시각을 키워야 한다.”
■서울 영파여고생 즉석 토론
동아일보에 난 예고기사를 스크랩해 친구들에게 돌려 보이며 수강을 권유했다는 김명인양은 “수업시간에는 들을 수 없어 답답했던 부분에 대해 교수님께서 명쾌하게 설명해 주셔서 좋았다”고 말했다. 김양은 이날 강연에 대해 “구한말의 상황이나 현재의 보수-개혁간 갈등상황이 모두 이분법적 사고에 묶여 있다는 지적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며 “문제는 국론분열의 상황이 아니라 이를 통합할 정치력의 부재라는 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조영경양은 “자주는 조용하면서도 실리적인 결과로 얻어내야 한다는 부분이 좋았다”면서 “미국의 이라크 파병요구에 대해 대통령은 파병의지를 뚜렷이 밝히고, 국회에서는 이를 부결시키는 민주적이면서도 초당적인 대응이 아쉬웠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한미희양은 한참 고민 끝에 “과거사문제도 친일파와 그 후손을 처단하는 국론분열의 방식보다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국론통합형 방식이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슬기롭게 들렸다”고 말했다.
한양과 함께 이날 처음 강연을 들으러 온 이미화양은 “처음엔 대학교수님의 강의라서 용어가 어려워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너무 쉽게 설명해 주셨다”면서 “특히 역사를 현실과 연계해 설명해 주시니까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이해도 늘리고 수능시험과 논술시험에 동시에 대비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이번 주 토요 역사강좌(제3강)▼
▽일시=16일(토요일) 오후 4시반∼6시
▽장소=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21층 대강당
▽주제 및 강사〓‘1920년대 민족언론의 담론 투쟁’(김용직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제3강의 이해를 돕는 책
△한국 근현대정치론(김용직 지음·풀빛·1999년)
△한국신문사(최준 지음·일조각·1993년)
△한국언론사(정진석 지음·나남출판·1995년)
■강좌에 관한 사항은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02-920-7089, eastasia@sungshin.ac.kr)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수강료 없음.
■지금까지의 내용은 동아닷컴(www.donga.com)'2004 청소년 역사강좌' 코너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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