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홍훈·李鴻勳)는 일본 효고(兵庫)현 가쿠린지(鶴林寺) 보물관에 보관돼 있던 감정가 10억원 상당의 고려불화 아미타삼존상 등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13일 무속인 김모씨(55)와 황모씨(53)를 구속 기소했다.
이들이 훔친 고서화는 대부분 일본의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나 현 또는 시 지정 중요문화재로 총감정가만 31억여원에 이른다.
▽수사 결과=김씨 등은 일본에 불법 체류하고 있던 김씨의 동생(48·일본에서 구속 기소돼 재판 계류 중)과 공모해 1998년과 2001, 2002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범행했다.
범행 대상이 된 사찰은 가쿠린지를 비롯해 일본 오사카(大阪) 에이후쿠지(叡福寺)와 아이치(愛知)현 린쇼지(隣松寺) 등 3곳. 검찰은 이들이 관광객으로 가장해 10여차례 현장답사를 벌였으며 배척(속칭 빠루)을 이용해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수사에 나선 일본 경찰은 지난해 3월 김씨의 동생을 검거한 뒤 한국으로 도주한 김씨 등을 잡기 위해 6월 말 한국 검찰에 수사 공조를 요청했다.
현재 검찰은 이들이 국내로 들여와 처분했다고 진술한 아미타삼존상 등 고서화 5점의 소재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범행 동기는 빗나간 애국심?=김씨는 검찰에서 “모 대학 교수가 쓴 고려불화 관련 서적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고려불화 대부분이 일본에 소장돼 있고 한국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이 약탈해 간 문화재를 되찾아오기로 뜻을 모았다는 것. 그러나 검찰은 △김씨 등이 훔친 47점 가운데 5점만이 고려불화로 추정되고(그중 2점은 확인됨) △김씨가 아미타삼존상을 감정가의 10분의 1 수준인 1억1000만원에 국내 골동품상에게 판매해 돈을 챙긴 만큼 김씨의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아미타삼존상은 어디로=김씨가 골동품상에게 처분한 아미타삼존상은 그 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어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 국내로 반입된 다른 고서화들의 소재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검찰이 고서화를 찾아낸다 해도 일본으로 반환될지는 미지수다.
현 소유자가 고서화를 살 때 훔친 물건인 줄 알았다면 형법상 장물취득죄가 적용돼 물품은 압수되고 원소유자인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물품으로 알고 고서화 거래상 등을 통해 적절한 가격에 이를 구입했다면 민법상 ‘선의(善意) 취득’에 해당된다.
현행법은 이 경우 피해자가 현 소유자가 지불한 금액을 변상하고 2년 이내에 반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는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것인 데다 강제 규정이 아니어서 일본으로 반환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아미타삼존상▼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觀音)과 세지(勢至)보살을 배치하고 있는 그림. 아미타삼존상은 아미타여래가 앉아 있고 두 보살은 양 옆에 서 있는 모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려불화인데도 가쿠린지 홈페이지에는 이를 ‘중국화로 명(明)시대의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