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佛畵 ‘기구한 귀향’… 日 사찰 돌며 47점 훔쳐

  • 입력 2004년 10월 13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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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명 사찰을 돌아다니며 값비싼 고려불화를 비롯해 일본의 중요문화재 47점을 훔친 일당이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홍훈·李鴻勳)는 일본 효고(兵庫)현 가쿠린지(鶴林寺) 보물관에 보관돼 있던 감정가 10억원 상당의 고려불화 아미타삼존상 등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13일 무속인 김모씨(55)와 황모씨(53)를 구속 기소했다.

이들이 훔친 고서화는 대부분 일본의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나 현 또는 시 지정 중요문화재로 총감정가만 31억여원에 이른다.

▽수사 결과=김씨 등은 일본에 불법 체류하고 있던 김씨의 동생(48·일본에서 구속 기소돼 재판 계류 중)과 공모해 1998년과 2001, 2002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범행했다.

범행 대상이 된 사찰은 가쿠린지를 비롯해 일본 오사카(大阪) 에이후쿠지(叡福寺)와 아이치(愛知)현 린쇼지(隣松寺) 등 3곳. 검찰은 이들이 관광객으로 가장해 10여차례 현장답사를 벌였으며 배척(속칭 빠루)을 이용해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수사에 나선 일본 경찰은 지난해 3월 김씨의 동생을 검거한 뒤 한국으로 도주한 김씨 등을 잡기 위해 6월 말 한국 검찰에 수사 공조를 요청했다.

현재 검찰은 이들이 국내로 들여와 처분했다고 진술한 아미타삼존상 등 고서화 5점의 소재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범행 동기는 빗나간 애국심?=김씨는 검찰에서 “모 대학 교수가 쓴 고려불화 관련 서적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고려불화 대부분이 일본에 소장돼 있고 한국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이 약탈해 간 문화재를 되찾아오기로 뜻을 모았다는 것. 그러나 검찰은 △김씨 등이 훔친 47점 가운데 5점만이 고려불화로 추정되고(그중 2점은 확인됨) △김씨가 아미타삼존상을 감정가의 10분의 1 수준인 1억1000만원에 국내 골동품상에게 판매해 돈을 챙긴 만큼 김씨의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아미타삼존상은 어디로=김씨가 골동품상에게 처분한 아미타삼존상은 그 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어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 국내로 반입된 다른 고서화들의 소재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검찰이 고서화를 찾아낸다 해도 일본으로 반환될지는 미지수다.

현 소유자가 고서화를 살 때 훔친 물건인 줄 알았다면 형법상 장물취득죄가 적용돼 물품은 압수되고 원소유자인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물품으로 알고 고서화 거래상 등을 통해 적절한 가격에 이를 구입했다면 민법상 ‘선의(善意) 취득’에 해당된다.

현행법은 이 경우 피해자가 현 소유자가 지불한 금액을 변상하고 2년 이내에 반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는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것인 데다 강제 규정이 아니어서 일본으로 반환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아미타삼존상▼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觀音)과 세지(勢至)보살을 배치하고 있는 그림. 아미타삼존상은 아미타여래가 앉아 있고 두 보살은 양 옆에 서 있는 모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려불화인데도 가쿠린지 홈페이지에는 이를 ‘중국화로 명(明)시대의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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