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등에 출연했던 뮤지컬 배우 이석준씨(32)가 진행하는 ‘이야기 쇼’는 뮤지컬 배우 한 사람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도 듣는 토크쇼다. 이씨는 “뮤지컬 배우들은 작품 외에는 팬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어 이 쇼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 4월부터 시작된 ‘이야기 쇼’는 인터넷 홈페이지(www.iyagishow.com) 등을 통해서만 공연 소식을 알려 왔음에도 뮤지컬 팬들 사이에 입소문이 널리 퍼졌다. 11일로 24회째를 맞은 ‘이야기 쇼’ 현장을 찾았다.
● 배우들의 수다
“바쁜 서울 살이/만날 일 드물지만/그래도 우리 모두 모이는 거야/그건 바로 오늘∼”
조명이 무대를 밝히자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삽입곡 ‘그래도 모이는 거야’를 부르며 초대 손님인 김장섭(36)이 등장했다. 김장섭은 최근 막을 내린 ‘크레이지 포 유’에 이어, ‘사랑은 비를 타고’에 출연 중이다.
이날 80석 규모의 이 소극장을 찾은 관객은 60여명. ‘이야기 쇼’는 ‘공연’이라기보다는 뮤지컬 팬들과의 ‘만남’에 가깝다.
김장섭은 출연작 ‘캣츠’에서 ‘얼쩡 고양이’(대사 없이 얼쩡거리는 코러스)를 하던 이야기며, 안재욱 오정해 김진수와 함께 ‘병풍’(대사나 율동조차 없는 코러스)을 하던 무명 시절, 그리고 유쾌한 ‘뒷담화’를 이석준과 함께 펼쳐 나갔다.
“남경주 선배님은 데뷔 때부터 주연을 맡아서 저처럼 ‘밑에 동네’ 애들의 설움은 몰랐죠.”
“그 선배님은 지금도 몰라요.”(웃음)
관객 이자영씨(21·가톨릭대 의대 본과 1년)는 “작품의 배역으로만 보던 배우가 실제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아 자주 보러 오게 된다”고 말했다.
● 팬덤, 뮤지컬 발전의 원동력
‘이야기 쇼’에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뮤지컬 삽입곡을 부르는 ‘배우와 맞장뜬다’ 등 팬들이 참여할 공간이 많다.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나오는 토크쇼를 보기 위해 기꺼이 관람료 2만5000원을 내고 극장을 찾는 뮤지컬 팬이야말로 이 쇼의 존재 기반이다. 요즘 뮤지컬계의 최고 스타인 조승우가 출연했을 때는 80석 정원을 보조석까지 동원해 130명으로 늘렸음에도 대기자가 400명이 넘었다.
‘이야기 쇼’는 ‘뮤지컬 팬’들이 만드는 공연이다. 2주마다 모집하는 ‘짬뽕이’(짬짬이 자원 봉사하는 이)들은 기꺼이 나서 진행을 돕는다. ‘이야기 쇼’를 꾸려 가는 고정 스태프는 PD 겸 구성작가인 범지현씨 등 10명.
뮤지컬 평론가인 순천향대 원종원 교수(신문방송학)는 “‘이야기 쇼’ 같은 사례는 뮤지컬이 발달한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에도 유례가 없는 독특한 팬덤(fandom)문화”라며 “한국에서는 뮤지컬 팬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뮤지컬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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