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종교가 된 정치, 이성을 마취시킨다”

  • 입력 2004년 10월 24일 18시 19분


1933년 합법적 선거로 집권한 히틀러가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에서 대중연설을 하고 있다.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주의를 신성시하고 바그너 음악을 통해 이를 미학화함으로써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끌어낸 대중독재의 전형적 지도자였다. -아일보 자료사진
1933년 합법적 선거로 집권한 히틀러가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에서 대중연설을 하고 있다.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주의를 신성시하고 바그너 음악을 통해 이를 미학화함으로써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끌어낸 대중독재의 전형적 지도자였다. -아일보 자료사진
프랑스 비시 정부 아래서 나치의 유대인 감금과 학살에 가담하고 동조했던 수백만명의 프랑스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일본제국주의 시절 군국주의 체제에 비판적이었던 수천명의 급진적 청년 지식인들을 가미카제 특공대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일까.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가 29∼31일 한양대 대학원 7층 화상회의실에서 갖는 제2차 대중독재 국제학술대회는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응답으로 마련됐다.

대중독재론은 한양대 임지현 교수를 중심으로 ‘20세기 독재체제가 독재자의 억압과 강제뿐 아니라 대중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가설 아래 이론화 작업을 진행 중인 새로운 학설이다.

지난해 10월 제1차 대중독재 국제학술회의의 주제는 ‘강제와 동의: 대중독재에 대한 비교사적 연구’였다. 여기서는 20세기 동서양의 독재체제가 경기 침체와 사회적 혼란을 틈타 대중의 절망과 증오심을 교묘히 이용해 그들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냈다는 비판적 분석이 주조였다.

올해 2차 국제학술회의의 주제는 ‘대중독재: 동의의 생산과 유통’이다. 대중독재체제가 대중의 동의와 참여를 어떤 방식으로 끌어냈는지 그 구체적 행태에 대한 분석이다.

첫 번째는 정치의 신성화다. 에밀리오 젠틸레 이탈리아 로마대 교수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체제에서의 정치의 신성화’라는 발표문을 통해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의 종교화가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는가를 분석한다. 젠틸레 교수는 “모든 독재체제는 대중에게 새로운 세상과 인간형의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자격을 지녔다고 믿는 열렬한 광신자 집단을 탄생시키며, 단일하고 균질적인 공동체 형성과 보존을 방해하는 ‘사악한’ 분자들을 절멸시키려는 종교화의 행태를 보인다”고 분석한다.

두 번째는 정치의 미학화다. 정치의 미학화는 독재정부가 내세우는 비전을 대중에게 각인시켜 도취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 대표적 방법 중 하나가 역할모델을 내세워 영웅시하는 것이다. 이진일 한양대 연구교수는 치정관계로 살해됐다가 나치 돌격대의 영웅으로 둔갑한 호르스트 베셀, 동료 노동자들의 성과까지 몰아 받아 노동영웅으로 조작된 스탈린시대의 스타하노프, 공비에게 무참히 살해당했을 뿐인데 반공영웅이 된 이승복 등 동서양의 다양한 영웅숭배에 숨겨진 공통점을 추출했다.

정치의 신성화와 미학화는 엘리트 지식인을 포함해 전체 대중을 열렬한 추종세력으로 마취시킨다. 나치의 제국치안본부 지도부 221명의 대부분이 독일 주류사회의 엘리트 출신이었고(미하일 빌트 함부르크 사회연구소 연구원), 프랑스 비시 정부 하의 프랑스인 대다수가 반유대주의를 지지했으며(아네트 비비오르카 파리국립학술연구소 연구원), 일본이 제국주의화하면서 ‘국민화’라는 미명 하에 조선과 대만의 식민지 청년까지 대동아전쟁에 참여하게 만든 것(사키아 나오키 미국 코넬대 교수)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정치의 윤리화’와 미디어정치로 홍역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한번쯤 경청할 만한 주제가 아닐까.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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