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성형수술은 기원전 800년경 고대 인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도에는 죄를 지은 사람의 코를 잘라내는 형벌이 있었다. 일단 잘린 코는 복구가 불가능해 범죄자란 낙인을 평생 지고 살아야 했다.
쿠마스라 불리던 의사가 이런 현실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간통죄로 잡혀 코가 잘린 죄인의 이마 피부를 떼서 코를 만드는 수술을 했다. 성공했을까? 아쉽지만 결과는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어쨌든 그의 코 성형 기술은 유럽으로 전파됐다. 로마 최초의 외과의사인 아우렐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셀수스가 이 기법으로 수술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셀수스는 성형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성형할 부위에서 가장 가까운 피부를 떼어 내 이식한다’는 이론을 만들었다. ‘공여부 우성이론’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이후 성형수술의 기초가 됐다.
적극적으로 외형을 고치는, 현대적 의미의 성형수술은 19세기 말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독일에 사는 많은 유대인들이 ‘진정한’ 독일인이 되려고 유대인 특유의 매부리코를 없애는 성형수술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언청이 수술이 처음으로 이뤄졌다.
20세기 들어 터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성형수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전쟁으로 외모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고치면서 이른바 ‘재건성형’이 성행한 것이다.
또 항생제의 개발은 성형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수술 전후 세균의 감염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성형기술에 대한 시도가 줄을 이었다. 단지 피부재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외모를 아름답게 하기 위한 ‘미용성형’이 태동한 것도 이 무렵이다.
독일인 게일즈니는 파라핀을 이용해 가슴을 확대하는 성형수술에 성공했다. 이 방법은 빈약한 가슴을 가진 여성을 매료시켰다. 이후 파라핀이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 실리콘, 생리식염수 등으로 대체될 때까지 이 방법은 가슴확대수술의 대표기법으로 널리 이용됐다.
1960년경 지방흡입술이 일부 의사들에 의해 시도됐다. 그러나 부작용이 커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곧 잊혀졌다. 1977년 프랑스 의사 일루즈가 지방을 녹인 뒤 긴 관을 통해 빼내는 현대적 방법을 개발하면서 지방흡입술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제 21세기다. 미용성형은 성형수술의 큰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레이저 등 첨단기기가 등장하고 흉터는 최소화하는 기술이 잇따라 선보였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자연성형’이 큰 화두로 등장했다. 성형했으면서도 성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하자는 것. 그래서 자연스러운 선을 강조한다.
10년 후 성형수술은 어떻게 발전할지 정말 궁금해진다.
(도움말=엔제림 성형외과 심형보 원장)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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