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언론법안]독자 많은 신문에 ‘법적 억지’

  • 입력 2004년 10월 25일 18시 25분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신문법안)은 법안 자체에 모순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문시장점유율 제한과 구독요청 거부금지의 상충이다. 이 법안을 충실하고 엄격하게 따른다면 난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A신문의 시장점유율이 법적 상한선인 30%를 넘을 경우 그 신문이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스스로 시장점유율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 독자에게 신문 구독을 중지해 달라고 권유할 수도 없고, 신규 독자의 구독신청을 물리칠 수도 없다. 그 또한 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점유율 제한과 구독권 보장의 모순

상위 3개사인 A신문 B신문 C신문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법적 상한선인 60%를 넘을 경우엔 더욱 이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법의 기준에 맞추려면 독자들을 상대로 ‘3개 신문의 구독을 줄여 달라’는 공동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것이나, 이 역시 독자의 자발적인 신문선택권을 제한하는 게 아니냐는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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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법안 제9조는 ‘정기간행물사업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유상으로 구독을 원하는 자의 구독 요청을 거부해서는 아니 되며,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가격으로 차별 없이 공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 돈 내고 내가 좋아하는 신문을 보겠다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문제가 있다면…

2개의 규정이 상충된다면 어느 한쪽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문법안의 경우엔 조금만 생각해보면 확실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독자의 구독권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되므로 이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신문시장의 점유율 제한에 논리적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법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흔히 인용하는 유럽의 예를 검토해 보면 문제점이 한층 분명해진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 신문시장점유율을 규제하는 나라들도 신문사간 인수나 합병으로 점유율 상한선을 넘긴 경우에 한해서만 제약을 가할 뿐이다. 즉, 자본력에 의한 인위적인 독자선택권 침해만 규제대상이 된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제도

자유로운 경쟁에 의한 신문사의 내적 성장을 통한 점유율 증가를 정부가 문제 삼는 나라는 없다. 시장경제원리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당 신문법안의 신문시장점유율 제한 규정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법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위헌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신문시장점유율 제한은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양승목(梁承穆·언론정보학) 서울대 교수는 “점유율 상한선을 넘지 않으려면 A신문은 부산에서 못 보게 하거나 B신문은 추풍령 이남에서 못 팔게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인수합병에 의해 점유율 상한선을 초과한 신문재벌조차 정부가 규제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법안과 동떨어진 점유율 산출논리

신문법안 제16조는 점유율 제한의 대상으로 ‘일간신문(단 무료로 발행되는 신문은 제외)’이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안 제2조는 일간신문의 종류로 △일반일간신문 △특수일간신문 △외국어일간신문의 3개를 예시하고 있다. 다른 규정이 없는 한 이들 일간지 모두가 점유율 제한 대상에 포함된다. 물론 전국지와 지방지의 구별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른바 ‘언론개혁세력’이 여론독과점의 근거로 제시하는 점유율은 법안과는 동떨어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10개 주요일간지의 매출액 중 동아 조선 중앙의 매출액이 70%를 넘는다는 식이다. 등록된 일간지만 100개가 넘는데 이처럼 10개만 따로 떼어 자신들의 논리에 꿰맞추려 하는 것은 억지다. 실제로 매출액이 확인된 39개 일간지만 계산해도 3개사의 매출액은 40%대로 뚝 떨어진다.

●대부분 발행부수도 안 밝히는데…

신문법안엔 점유율 산출기준도 나와 있지 않다. 일반기업은 대체로 매출액을 기준으로 점유율을 산출하고 그게 어려울 경우 판매량 등을 보조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나, 신문산업은 예외적으로 발행부수를 산출기준으로 삼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따라서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신문점유율 논란 자체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다. 발행부수공사기구(ABC)에 가입해 매년 발행부수를 공개하고 있는 일간지는 동아 조선 중앙 등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4월 국회에서 “(신문업계의) 시장점유율을 계산하기는 어렵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차별입법은 중대한 헌법위반이다

신문법안처럼 특정시장에 한정해 지배적사업자 기준을 별도로 마련한 것은 1980년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처음이다. 공정거래법은 ‘시장점유율이 상위 1개사 50%, 상위 3개사 75% 이상’일 경우 지배적사업자로 추정하고 있으나, 신문법안은 요건을 훨씬 강화했다.

이 같은 차별입법에 대해 여당은 ‘신문의 공공성’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헌법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언론자유의 우월적 지위 때문에 신문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기업보다 신중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언론개혁세력이 모델로 내세우는 프랑스도 (인수합병에 의한) 신문시장의 점유율 상한선은 30%로 다른 산업의 25%보다 높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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