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년 만에 그가 한국무대에 다시 오른다.
11월5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꼽추, 리차드 3세’. 1995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후 이번이 두 번째 공연이다.
실존인물인 영국의 리처드 3세(1452∼1485년)는 작품 속에서 왼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꼽추로 나온다. 여기서 비롯된 열등감 때문에 권력에 더욱 집착하는 그는 왕권을 잡는 과정에서 형과 어린 조카, 아내까지 가볍게 살해하는 냉혹한 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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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3세’ 역을 맡은 배우 안석환(45)을 24일 저녁 예술의 전당 연습실에서 만났다.
● 몸 반쪽으로 연기해야 하는 악인
2시간에 가까운 전막 리허설을 마친 그는 검정색 민소매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그는 “땀 때문에 매일 셔츠를 세 벌씩 챙겨온다”고 했다. 두 벌의 셔츠가 든 비닐 봉투를 누르니 젖은 빨래 마냥 땀이 주르륵 짜여 나왔다. 오른팔에는 500원짜리 동전 서너 개만한 보랏빛 멍 자국이 선연했다. 오른쪽으로만 몸을 지탱해 균형을 잡으려다 보니 온통 상처투성이라고 했다.
극 중 내내 등을 웅크리고, 왼팔과 왼발을 한껏 뒤튼 채 하이에나처럼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그의 연기는 한눈에 봐도 중노동이다.
‘리처드 3세’는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지만 외국에서는 로렌스 올리비에나 앤서니 쇼어, 알 파치노 등 당대의 배우들이 이 역을 맡았을 만큼 배우라면 한번쯤 탐내는 캐릭터다.
연출가 한태숙씨는 “그동안 이 작품 공연이 꺼려져 온 중요한 이유가 리처드3세를 제대로 해낼 배우가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며 “집요하게 배역을 파고드는 안석환씨를 보며 ‘역시 주연 배우감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칭찬했다.
● 내 인생의 세 번째 캐릭터
“그 어떤 악한보다 더한 악역이죠. 제 목표는 ‘페이소스’에요. 작품을 보고 관객이 ‘저런 나쁜 놈은 죽여야 해’라고 느낀다면 전 실패한 겁니다. 관객들이 ‘저런 불쌍한 인간이 생겨나지 않도록 감싸줘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죠.”
안석환은 악인을 연기하면서도 인간 심연에 잠재된 불완전성을 끌어냄으로써 관객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그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보다 힘든 역 같다”고 했다.
올해로 연극을 시작한 지 18년. 1997년과 98년 동아연극상을 거푸 수상했을 만큼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안석환은 자신이 맡았던 수많은 배역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두 개의 뚜렷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 그리고 ‘남자 충동’의 장정. 그는 “리처드 3세는 내 배우 인생에서 세 번째 캐릭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습실 불을 끄고 나올 때 그는 넥타이까지 맨 양복 차림이었다.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실에 있으면서도 그는 “배역의 느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정장 차림에, 비극적 느낌의 검은색 옷 위주로 입고 다닌다고 했다.
“영화나 TV는 그냥 몸을 ‘빌려주는’ 것 같은데 연극은 내가 내 몸뚱이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쾌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연극을 계속하게 되나 봐요.”
11월 28일까지. 화∼금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 7시반, 일 오후 3시. 2만∼4만원. 02-764-8760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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