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발레리나

  • 입력 2004년 10월 25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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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예술가는 죽어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문학 음악 그림은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생시에 평가받지 못한 예술인들이 죽어서 영광을 누리는 사례도 허다하다. 하지만 발레만은 예외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몸이 곧 예술의 소재이자 도구인 발레는 몸이 시들면 예술도 끝나 버린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마고 폰테인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40대에도 프리마 발레리나의 자리를 놓지 않았으나 대부분 30대 안팎에 스스로 무대를 떠난다.

▷로맨틱 고전 발레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덴마크 같은 나라가 강국이다. 왕실과 귀족들이 열렬히 후원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사회주의혁명 이후에도 가장 귀족적인 예술인 발레만큼은 잘 보존한 것은 아이러니다. 독재자 스탈린도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와 레닌그라드 키로프 발레 애호가였다. 최근 들어 중국과 쿠바가 발레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한국도 1990년대 들어 역량 있는 무용수들이 잇따라 출현했고, 팬들의 열성 또한 대단하다.

▷고전 발레의 꽃은 역시 독무(獨舞)를 추는 여성 주역 무용수인 발레리나다. 발레단의 인기와 명성, 공연의 흥행 여부는 발레리나 한 사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의 전설적 발레리나 파니 체리토의 경우, 누군가 그녀의 목욕물을 훔쳐다가 팔아서 재미를 볼 정도였다고 한다. 오늘날 할리우드 스타들의 인기가 무색할 정도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수많은 발레 요정들이 톱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실물’이 발레리나 강수진(37)의 발이다. 2년 전 TV를 통해 그녀의 ‘참혹한 발’이 최초로 공개되자 팬들은 경악했다. 솔로로 발탁된 후 한 시즌에 250켤레의 토슈즈(Toe Shoes)를 바꿔 신을 정도로 맹연습한 결과다. 이를 알게 된 팬들은 수백 년 묵은 고목처럼 뒤틀리고 옹이가 박힌 그의 발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로 부르기 시작했다. 공연을 위해 내한한 그녀는 발의 안부(安否)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더 기형적으로 돼 신랑이 ‘피카소 식’으로 변해 간다고 한다”며 웃었다. 진정 그녀의 발에 ‘입 맞추고 싶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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