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이날 초면이었다.
“최 작가가 나와 마찬가지로 꽃을 표현한다는 점이 우선 반가웠어. 색을 다루는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 미술의 본질은 결국 색이거든. 이번 전시는 내가 선배로서 들러리를 제대로 서 준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이야.”(김)
최 작가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김 화백 옆에 놓여 있는 책 한 권에 눈을 돌렸다. 일본 고단샤 출판사에서 나온 ‘이조의 민화(民畵)’다.
“제가 가장 아끼는 책인데 선생님도 갖고 계시군요. 1980년대 중반, 민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선생님이야말로 민화적 전통을 제대로 구현하고 계신 몇 안 되는 작가라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최)
가장 현대적 장르인 설치미술을 선보여 온 최 작가가 조선 민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니 반가우면서도 의외라 생각되었는지 김 화백이 그 이유를 물었다.
“한때 얼마나 잘 베낄 것인가에 몰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곧 자유를 지향하는 일인데, 내 것이 아닌 것을 그리면서 자유를 추구한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결국, 내게 가장 익숙한 것을 찾다 보니, 조선 민화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 거죠.”(최)
“우리 세대 역시 미술공부하려면 뉴욕이나 파리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 나 역시 한때 그런 길을 갔고…. 그러다 골동품을 수집하면서 한국에 민화가 있고 자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 민화는 자유로움 그 자체거든. 생활 그 자체고. 미술의 본질과 가장 맞닿아 있는 셈이지.”(김)
내친 김에 김 화백은 창고로 달려가 10폭짜리 민화 병풍 하나를 꺼내 왔다. 광복 후 그려진 것인데 일상에 대한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유쾌한 그림이었다.
“이 그림만 봐도 옛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는지 느껴지잖아. 요즘 현대미술가들은 자연을 도외시해. 점점 인공적이고 기계적인 것에만 몰두하지. 그러면 감동이 없어.”(김)
“저 역시 자연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꽃’이었습니다. 어느 날,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에서 공해와 쓰레기 더미로 썩어가는 도시에 대해 슬픔과 쓸쓸함을 동시에 느꼈어요. 이 도시를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다 꽃을 찾아낸 거죠.”(최)
두 작가가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같았다. 세대와 장르를 뛰어넘어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미술은 결국, 보는 사람의 영혼을 흔드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온통 싸움과 갈등으로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두 사람이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애정과 존경을 나누는 화합과 상생의 전시는 12월 12일까지 열린다. 김 화백의 꽃 그림 15점을 배경으로 최 작가의 꽃 설치작업이 선보일 예정이다. 02-732-6170
속초=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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