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언론법안’]‘일부 신문 여론독점’ 근거없다

  • 입력 2004년 10월 26일 18시 35분



여권의 신문시장 점유율 제한론은 전제와 접근방법 모두 잘못됐다. 급변하는 언론환경도 외면하고 있다. 이처럼 여권이 눈 딱 감고 입법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일차적으로는 권력에 비판적인 신문의 힘을 빼자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신문시장마저 권력의 코드에 맞게 재편하려는 것이다.

●‘신문시장 독과점’ 전제는 틀렸다

신문시장 점유율 제한론은 동아 조선 중앙 등 3개 일간지가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으며, 그것이 여론시장의 독과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26일자 본보 기사에서 짚었듯이 신문법안의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면 어느 기준으로 보나 신문시장의 현 실태는 독과점과 한참 거리가 멀다.

최근 닐슨미디어리서치의 조사만 봐도 3개 일간지의 가정 정기구독률은 모두 합쳐 31.3%에 지나지 않는다. 신문을 2개 이상 보는 가정까지 고려하면 3개 일간지의 점유율은 그보다 훨씬 밑돌 것이다. 아사히 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 등 3대 일간지가 전국지 시장의 76.8%를 차지하는 일본(2003년 발행부수 기준)에도 점유율 규제는 없다.

●‘여론시장 독과점’ 전제는 허구다

여론시장 독과점은 더욱 말이 안 된다. 한국언론재단이 최근 발표한 ‘2004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전국의 18세 이상 65세 미만 남녀 12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63.6%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TV를 꼽았다. 신문은 11.2%에 불과했다. 여론의 동향을 알기 위해 이용하는 매체도 TV가 49.4%로 가장 많았다. 신문은 13.3%였다.

한국갤럽이 15대 대선 직후 투표자 1524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선거에서 TV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후보를 결정하는 데 가장 많이 참고한 것으로 TV토론을 꼽은 사람이 51.6%나 됐다. 2위도 TV연설(16.8%)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2002년 대선 직후 “방송이 없었으면 당선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방송 독과점은 모르는 체하나

사실 여론의 다양성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것은 신문이 아니라 방송 쪽이다. 방송위원회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KBS MBC(지방사 포함) SBS 등 지상파 3사의 시청점유율이 78.7%에 이른다.

방송 3사는 또 13개의 PP(채널사용 사업자)를 운영하면서 케이블방송에서도 34.1%, 위성방송에서도 43.6%의 시청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방송 3사는 디지털멀티미디어 방송(DMB)을 비롯한 뉴미디어 사업 분야까지 사세를 확장하고 있어 매체간 균형발전과 방송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급자 중심’ 접근부터 잘못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지배적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시장의 범위를 설정할 때 상품의 대체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예를 들어 커피 값이 크게 올라 소비자들이 커피 대신 홍차를 산다면 커피시장을 정의할 때 홍차시장까지 확대해 해석하는 것이다. 이른바 소비자 중심적인 접근법이다.

소비자들은 정보 또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얻고 있으므로 신문의 점유율만 규제하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문재완(文在完·법학) 단국대 교수는 “언론의 독과점을 우려하면서 신문산업만 따로 떼어내 접근하는 것은 공급자 중심의 사고”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도 지난해 미디어 소유규제를 완화하는 규제개혁안을 발표하면서 TV 라디오 신문 인터넷 등 모든 언론매체를 모집단으로 해 특정언론사의 집중도를 분석했다.

●‘같은 10개’보다 ‘다른 3개’가 낫다

신문시장 점유율 제한론자들의 주장처럼 점유율이 고른 신문사가 여러 개 존재하면 여론도 그만큼 다양해질까. 이 역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다. 이에 김동규(金東奎·신문방송학) 건국대 교수는 “시장 집중에 대해 논의하기보다는 정치적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적정한 신문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시장이 협소한 어느 지역에 동일한 내용과 이념을 전달하는 10개의 신문보다는 상이한 내용과 이념을 전달하는 3개의 신문이 있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유다. 그렇다면 보도의 균등성과 균형성을 강조하는 조항까지 신설해 신문논조를 획일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신문법안의 문제점도 함께 검토돼야 할 것이다.

●조사 자체가 치명적인 압력이다

공정거래법은 특정회사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행위를 했다는 제소가 들어오거나 그런 혐의가 있을 때만 시장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신문법안은 신문발전기금 지원대상자 선정을 위해 매년 시장지배적사업자를 추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점유율이 높은 신문사가 불공정행위를 했다는 허위신고를 하더라도 공정거래위는 진위 판단을 이유로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해당 신문사는 조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시달리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게 무서운 ‘권력의 덫’이다. 김종석(金鍾奭·경제학) 홍익대 교수는 “문제가 없는 신문사도 경쟁자가 의도적으로 점유율 독소조항을 악용할 경우 상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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