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용도 모른 채 무조건 이 작품을 보러 간다면,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제목만 보고 내용을 어림짐작해 은근한 기대(?)를 품은 사람이거나 혹은 극작가 ‘박수진’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거나.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기대를 버리는 것이 좋다. 이 연극은 ‘초야’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초야’를 치르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결국엔 무참히 깨어지는 ‘초야’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자에 해당하는 관객이 많아서인지 ‘초야’는 연일 객석이 꽉 찰 만큼 발길이 이어진다.
박수진(32)은 올해 초 ‘줄리에게 박수를’로 연극 팬들에게 확실하게 이름을 알린 젊은 작가. ‘줄리에게…’에서 호흡을 맞췄던 동갑내기 연출가 손재원과 다시 뭉쳐 이 작품을 만들었다. 연극배우의 사랑을 다뤘던 ‘줄리에게…’와 달리 ‘초야’에서는 외국인노동자, 연변 처녀 등을 상대로 한 사기극 등 사회적 문제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
‘초야’는 옌볜 처녀가 포함된 결혼 패키지 상품을 소개하는 홈쇼핑 장면으로 시작한다. 옌볜 처녀-농촌 총각간의 결혼을 통해 고토(故土)를 회복하자는 기치를 내건 ‘고구려영토회복 준비위원회(고영회)’가 내놓은 이 상품을 통해 한국의 40대 노총각 채용과 20대 옌볜 처녀 옥자는 만난다.
‘고영회’ 이치수 회장은 두 사람의 혼례가 치러지는 서울 가리봉동 쪽방촌에 방송 취재진을 동원해 결혼식을 홍보 이벤트로 만든다. 어수선한 혼례식을 겨우 마친 두 사람은 초야를 맞게 되고 옷깃을 풀려는 순간, 경찰 사이렌 소리와 함께 초야는 엉망이 되어버린다….
경쾌하게 전개되는 전반부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씁쓸한 결말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 마음 속에는 묵직한 숙제가 남는다. “남녀가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첫날밤처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마주 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셈.
다만 재미를 담은 전반부와 주제를 담은 후반부가 고른 호흡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나 외국인 노동자, 조선족을 상대로 한 범죄 외에도 신용불량자, 명예퇴직자, 홈쇼핑방송으로 상징되는 현대 상업주의, 신성한 결혼까지 ‘편집’하는 방송(미디어)의 횡포 등 너무 많은 ‘문제의식’을 담으려다보니 극 전개가 다소 몰아치듯 느껴져 아쉬움이 남는다.
11월 7일까지. 화∼금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반, 7시반 일 오후 3시 6시. 1만2000∼2만원. 상상 블루 극장. 02-762-0810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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