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천년의 무게가 버거웠나… 신라 석탑들 복원

  • 입력 2004년 10월 28일 17시 24분


신라는 석탑의 나라다. 나무가 아니라 돌을 쓴 것은 그만큼 오래 남으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탑은 무너지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무너질 운명을 타고 났다.

일부 신라 석탑에 대한 보수 방침이 문화재위원회에서 내려졌다. 그대로 두면 위험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내년부터 감은사지 석탑과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을 순차적으로 일단 해체했다가 복원하기로 보수 계획을 세웠다.

○ 신라 석탑 수난사

1966년 9월 6일 아침 불국사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석가탑의 여러 부분이 훼손된 것이 발견된 것이다. 3층 탑신에 금이 갔으며 탑의 여러 군데가 떨어져 나갔다. 자세히 조사해보니 각 층이 원래 위치에서 몇cm씩 밀려 있었다.

단면도에서 희게 표시된 부분은 석가탑 안쪽의 공간을 나타낸다. 아래 흰 부분(B), 즉 기단의 안쪽은 탑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돌과 흙을 채워넣었다. 2층 탑신의 공간(A)에선 사리함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왔다.

얼마 후 그 원인이 밝혀졌다. 당시 신문의 기록은 이렇다.

‘김 등은 3일 밤 경북 여2009 택시를 대절, 불국사에 도착하여 미리 준비했던 재키로 석가탑 2번 탑신을 끌어올렸으나 보물을 발견 못해 실패, 다시 5일 밤에 3번 탑신을 끌어올렸으나 역시 보물이 없어 미수에 그쳤다.’

결국 10월 13일 석가탑의 기단(아래 받침 부분)을 제외한 탑신 부분을 해체해서 보수했다. 이 과정에서 2층 탑신 안쪽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됐다.

다보탑이 겪은 수난은 더 심하다. 일제 시대 해체돼 보수됐다는데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아 내부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알 수 없다.

다보탑에는 지금 사자 한 마리(사진)가 서있다. 하지만 원래는 네 마리였다. 빙허의 ‘불국사기행’에는 “들으매 이 탑의 네 귀에는 돌사자가 있었는데 두 마리는 동경의 모 요리점의 손에 들어갔다 하나 숨기고 내어놓지 않아 사실 진상을 알 길이 없고 한 마리는 지금 영국 런던에 있는데 다시 찾아오려면 500만원을 주어야 내어 놓겠다 한다던가?…(중략)…이 탑을 이룩하고 그 사자를 새긴 이의 영이 만일 있다하면 지하에서 목을 놓아 울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1902년 일본인 세키노 다다스(關野貞)는 다보탑을 조사한 후 사자 네 마리가 있다고 기록을 남겼는데 1909년 다시 왔을 땐 두 마리만 남았다고 했다. 1916년 발간된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사진에 두 마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1902년부터 1909년까지 두 마리가, 1916년 이후 다시 한 마리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 석가탑의 구조

석탑은 탑을 떠받치는 기단과 탑신(탑의 몸체), 상륜으로 이뤄졌다.

석가탑은 4조각의 돌로 기단을 만들었다. 기단을 바깥에서 보면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지만 안쪽은 둥근 원처럼 중앙이 비어있다. 즉 4조각의 돌이 각각 모서리 쪽이 두꺼운 ‘ㄱ’자로 되어 있다. 덮개돌을 덮었을 때 탑의 무게가 집중되는 모서리 부분을 튼튼하게 떠받치기 위한 것이다. 기단 내부에는 중앙에 거대한 돌을 놓거나 흙과 돌을 다져 넣어 속을 단단히 채운다.

이번에 석가탑 해체가 결정된 건 비디오 현미경으로 기단 안쪽을 들여다봤더니 안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탑을 처음 조성하면서 채워 넣었던 흙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갈라진 틈을 통해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안이 비자 탑 가운데가 조금씩 주저앉고 있다.

석가탑의 가운데 부분 3층으로 된 탑신은 각 층이 돌덩어리 하나로 이뤄졌다. 각 부분은 돌과 돌이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쇠로 된 연결고리로 단단히 고정됐다.

상륜은 탑 제일 꼭대기에 마치 꼬치처럼 생긴 것. 쇠로 된 기둥(찰주)에 돌 조각을 여러 개 끼워놓은 것인데 돌 조각이 마치 둥근 바퀴처럼 되어 있어서 상륜이라고 부른다.

석가탑의 상륜은 왠지 어색해 보인다. 단순하고 간결한 몸체와 잘 안 어울린다. 이 상륜은 원래 석가탑에 붙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1959년 불국사 복원 공사 당시에 전북 남원시 실상사 삼층석탑의 상륜부를 그대로 본 떠 만들어 얹었다. 실상사 탑은 석가탑보다 100년쯤 후에 세워진 것이다. 석가탑에도 제 상륜이 있었을 터이지만, 애초에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기록으로 안 남아있다.

○ 어떻게 보수하나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석가탑의 해체 복원 작업은 내년 감은사지 석탑 작업이 끝난 다음에 시작할 전망이다. 워낙 조심스레 작업을 해야 하는 만큼 탑 하나에 1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이 연구소의 남시진 사무관은 “석가탑은 기단부에 문제가 있어서 해체해야 한다는 대원칙은 수립됐지만 어떤 조사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지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일단 해체가 결정되면 각 부분의 위치와 모양, 상태를 디지털 장비로 정밀하게 실측 조사해 기록한다. 기준점을 설정하고 3차원으로 각각의 거리를 측정한다. 해체 후 본래 탑의 모습과 각 부분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해체는 치밀한 작업이지만 과정의 큰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조립의 역순으로 가장 윗부분인 상륜 부분부터 차례로 들어내는 것이다. 일반 건축물과 마찬가지다.

전통 해체 기술자인 드잡이공이 각 부분을 안전벨트로 묶은 후 화물을 들어올리는 호이스트를 이용해 지면으로 옮긴다. 말이 쉽지 묶고 들어 올리는 작업에는 엄청난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한다. 해체하면서 나타나는 탑의 내부와 각 부분은 디지털 입체 형상으로 제작돼 연구 자료로 쓰인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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