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과 함께 세계 3대 전략컨설팅 회사로 꼽히는 ‘베인 앤 컴퍼니’의 글로벌 디렉터이자 ‘베인 앤 컴퍼니 코리아’의 대표인 저자(42)는 삼성전자의 실제 주가가 대등한 수준의 해외기업들보다 평균 30% 정도 낮게 거래되는 것에 주목한다.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는 이런 디스카운트 현상은 삼성전자 같은 간판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주식회사’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책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100여개 기업 및 정부기관과 일하며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해 온 저자가 ‘한국 디스카운트’ 현상의 원인을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미국인으로 양쪽 문화를 다 접해 본 그가 때로는 아주 직설적으로, 때로는 사뭇 신랄하게 한국 사회를 향해 쓴소리를 던진다.
○리더… 한국의 리더들은 아파트 경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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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나라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람들에 대해 조소를 금할 수 없다.” 소위 교수나 전문가들은 1994년 삼성이 자동차산업을 시작할 때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신용카드를 남발할 때는 조용히 있다가 ‘카드대란’이 닥치자 너도나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기껏해야 뒷북만 친다는 것이다.
전문가연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소’는 대기업 임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금융 분야만 20년을 했다는 한 대기업 최고 금융책임자(CFO)는 알고 보니 현금 유통과 신용대부 관리에만 전문가였다. 새로운 금융기법에 대해서는 깜깜했다. 임원이 된 이후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비전문성은 대부분의 기업 임원들에게도 해당한다. 저자는 단언한다. “그들은 아파트 경비원 같다. 위험을 최소화하는 관리에만 치중할 뿐 이윤을 내는 경영은 할 줄 모른다.”
○기업… ‘갑’의 한마디면 불가능은 없다
저자는 이런 임원들의 비전문성은 한국기업의 풍토에서 생긴 것이라고 본다. 심지어 삼성그룹조차 삼성전자만 중추역할을 할 뿐 다른 계열사는 두드러진 실적을 내지 못한다. 대부분 재벌은 산하 20∼30개의 그저 그런 기업들이 중추역할을 하는 기업의 이윤을 빨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또 유능한 임원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직원 대비 최고경영자(CEO)의 연봉 비율은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낮다.
과정이 잘못됐어도 결과만 좋으면 되는, 원칙이 어그러지는 모습은 다반사다. 신용카드 회사에 투자했다가 입은 손실을 위험성이 매우 높은 채권에 투자해 만회한 간부를 두둔하는 그 기업의 CEO를 보고 저자는 아연실색한다. 원칙이 무시되는 과정은 곧 ‘투명성’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훼손을 뜻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갑’(계약의 주도적 당사자)의 위치에서 횡포를 부린다. ‘을’(계약의 종속적 당사자) 기업의 내부 상황이나 여건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는, 아주 불공정한 관행이 만연해 있다. 저자는 “비즈니스 세계는 냉혹한 것이지만 냉혹한 것과 불공정한 것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정부… 일기예보 말고는 믿을 게 없다?
저자는 한국 정부에서 ‘NATO(No Action Talk Only·실천 없는 말뿐)’ 현상의 전형을 발견한다. 현 정부 들어 향후 5년간 시행할 행정부의 100대 정책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의 100대 정책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10여년 동안 약속만 했을 뿐 실천은 드물었던 것이다.
세계 금융, 물류, 섬유 등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타령은 여전하다. 김영삼 정부부터 진행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실적은 이제 동남아보다 뒤처졌다. 관광객 유치 10년 계획은 어떻게 진척되는지조차 모른다. 수해는 매년 같은 지역에서 반복되지만 대책은 없고 교육은 ‘개혁’만 되풀이한다. 저자는 “끝없이 반복되는 타임머신의 궤도 속에 갇힌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평가… 한국주식회사가 고갈되고 있다
조직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인 전략, 조직구조, 리더십, 프로세스, 인적 자원, 문화로 ‘한국 주식회사’를 컨설팅한 결과 7점 만점에 3점(100점 만점에 42.8점)이 나왔다. 우리 국민 모두가 이민이라도 가야 할 정도로 나쁘진 않지만 우리가 이미 가입한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수준에는 미달한다는 것이 저자의 냉정한 판단이다.
저자는 앞으로 한국 산업구조의 성장 동인은 고(高)지식집약형 서비스업 및 제조업 분야라고 전망한다. 또 책에서 지적한 한국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빨리 제거해서 사회 전체가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과거 ‘한국병’을 다뤘던 여러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로서 “한국 주식회사가 가진 시간은 고갈돼 가고 있다”는 저자의 경고는 몇 번이고 곱씹어도 좋을 듯하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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