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두는 사카린이 주는 불량한 단맛도 맛이었지만, 와작 하고 깨물면 입가에 핏빛 물감이 뚝뚝 흘러 구미호를 무서워하던 친구들을 놀릴 수도 있는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나는 늘 먹고 싶은 그것을 먹을 수 없었다. 늘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없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애인을 하루 이틀 못 보는 괴로움은 거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아무튼 나는 피자두가 너무 먹고 싶어 급기야 도둑질까지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도둑질의 목적지는 단골가게 지연네. 어느 일요일 아침부터 낮까지 나는 그 집 앞에 앉아 땅바닥에 괜한 그림을 그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러고는 순둥이 아줌마가 잠시 변소에 간 사이 재빨리 한 알을 훔쳐 동네 후미진 골목으로 뛰었다. 그리고 죄의식도 없이, 아작아작 피자두를 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나는 그것을 다 먹고 ‘딱 한 알만, 더’ 하는 생각으로 다시 지연네 앞으로 갔다. 근데 아줌마가 대뜸 날 불렀다. 혹시나 싶어 놀라 고갤 들었는데, 아줌마가 ‘이거 먹어라’ 하시며 피자두 한 알을 건네시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좋아 고맙단 말 한 마디 할 겨를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고 냅다 집으로 뛰었다.
그러고는 피자두를 먹으며 구미호를 흉내 낼 요량으로 거울 앞에 섰는데, 가관이었다. 훔쳐 먹은 피자두의 흔적이 입가는 물론 이 사이사이까지…. ‘아줌마가 내 도둑질을 알았구나.’ 아침부터 낮까지 가게 주위를 맴돈 어린 도둑에게 아줌마는 매 대신 피자두를 주었구나 싶어 아팠다. 왜 나는 그 착한 아줌마의 피자두를 훔쳐 먹었나 싶어 내가 미웠다. 그래서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울면서 피자두를 먹었다. 그러고는 다시 그 집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지연네 아줌마, 그분은 이제 이 세상 분이 아닐 것이다. 아줌마에게 짧은 연서를 보낸다.
“아줌마 고맙습니다. 저한테 불량식품을 주셔서. 저는 아줌마네 불량식품 사먹고, 참으로 불량하게 자랐습니다. 불량하게 자라니 불량해서 외로운 많은 불량한 이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그들을 이해하기 쉬워 참으로 좋네요. 진정 고맙습니다.”
● 노희경 방송작가는?
△1966년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 △MBC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내가 사는 이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KBS 드라마 ‘거짓말’ ‘바보 같은 사랑’ ‘고독’ ‘꽃보다 아름다워’, SBS 드라마 ‘화려한 시절’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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