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1:기훈이 거울 속 자기모습에 득의양양해 한다
바람♂=기훈은 정부와 격렬한 섹스를 나눈 뒤 말하지. “수현인 날 사랑해. 나도 사랑하고.” 그거야. 남자는 아내도, 애인도 모두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 ‘영혼’을 책임질 정숙한 아내, ‘몸’을 기쁘게 할 섹시한 정부,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3의 여인. 가히 ‘환상의 트라이앵글’ 아닌가.
정숙♀=기훈은 기고만장해 있지만, 천만에. 기훈은 알고 보면 주인공이 아니야. 세 여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일 뿐이지. 잘 봐. 기훈은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시종 감정을 드러내지 않잖아? 알고 봤더니 주인공 기훈은 ‘대상’이었고, ‘대상’인 여자들은 주인공이었던 거야. 바람둥이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없어.
● 장면2:기훈이 정부의 발톱을 깎아준다
바람♂=남자가 아내를 ‘편안’한 대상으로, 정부를 ‘긴장’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건 편견이야. 이 영화는 남자의 진심을 드러내. 아내에겐 잘 보이고 싶고, 정부에겐 상상 가능한 모든 행동을 극한까지 저지르고 싶지. 기훈은 아내에겐 콩나물국을 끓여주지만, 정부에겐 발톱을 깎아주잖아?
정숙♀=기훈은 “사랑해. 사랑해”하면서 섹스 하지만, 절대로 정부를 사랑하지 않아. 섹스가 끝나면 기훈이 담배부터 물잖아?
● 장면3:기훈이 임신한 아내의 배에 귀를 댄다
바람♂=아름다운 순간이야. 비록 아내와 정부가 동시에 기훈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남자는 이럴 땐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어 해. 양심이 발동하거든.
정숙♀=놀고 있네. 아내는 이미 기훈 모르게 여러 번 낙태했어. 낙태는 남자에 대한 가장 처절한 응징이요 복수야. 여자는 남자보다 강해. 임신을 통해 남자를 ‘복제’할 수도 있지만, 남자를 뱃속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어. 남자에게 임신은 ‘환상’일지 모르지만, 여자에겐 ‘현실’일 뿐이야.
● 장면4:기훈이 정부와 함께 자신의 자동차 트렁크에 갇힌다
바람♂=정부는 “우리가 죽은 채 발견돼도 세상은 우릴 동정할거야”라고 해. 하지만 세상은 애인과 숨진 채 발견된 유부남을 동정하지 않아. 기훈은 극한상황에서 “수현이(아내)가 기다려. 나 나가야 돼!”하고 울부짖지. 가식이 아니야. 죽음의 문턱에서 남자는 아내가 절실해져. 하지만 모르겠어. 바람피우는 모든 남자가 지옥 같은 트렁크에 들어가 기훈처럼 피범벅이 돼야 하는 걸까. 너무 단호하고 꽉 막힌 메시지(원죄와 그 대가) 탓에 영화가 무슨 성경책 같잖아. 의미 과잉이야. 세상은 안 그래.
정숙♀=여기서 수컷의 실체가 드러나. 정부는 끝까지 기훈 없이 못 산다고 하지만, 남자는 손길을 뿌리치며 “이 개년”하잖아? 여자로서 정부가 불쌍해. 기훈이 자길 사랑할 거라 믿었다니. 트렁크는 ‘자궁’이야. 바람피우는 놈들은 다 죽어야 해. 아니면 이런 끔찍한 경험을 통해 다시 태어나거나.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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