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주홍글씨’ 3분 속성이해 과정

  • 입력 2004년 11월 3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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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어. 사랑해.”(기훈) “사랑했으면 괜찮은 건가요?”(경희) 정숙한 아내(수현·엄지원)와 섹시한 정부(가희·이은주)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엘리트 형사반장(기훈·한석규)이 매혹적인 미망인(경희·성현아)을 만나며 겪는 욕망의 삼각형을 담은 ‘주홍글씨’. 위 대사는 이 논쟁적 영화의 메시지를 콕 찍어낸다. 영화는 말한다. “너희가 짊어진 원죄의 대가를 치르라.” 과연 그럴까. 아니, 꼭 그래야 할까. ‘주홍글씨’에는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전복(顚覆)되는 4개의 결정적 장면이 있다. 이는 4명의 핵심인물들이 각기 자기 입장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다중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피우는 남자 관객’과 ‘정숙한 아내 관객’의 입장에서 이 장면들을 분석한다.

● 장면1:기훈이 거울 속 자기모습에 득의양양해 한다

바람♂=기훈은 정부와 격렬한 섹스를 나눈 뒤 말하지. “수현인 날 사랑해. 나도 사랑하고.” 그거야. 남자는 아내도, 애인도 모두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 ‘영혼’을 책임질 정숙한 아내, ‘몸’을 기쁘게 할 섹시한 정부,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3의 여인. 가히 ‘환상의 트라이앵글’ 아닌가.

정숙♀=기훈은 기고만장해 있지만, 천만에. 기훈은 알고 보면 주인공이 아니야. 세 여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일 뿐이지. 잘 봐. 기훈은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시종 감정을 드러내지 않잖아? 알고 봤더니 주인공 기훈은 ‘대상’이었고, ‘대상’인 여자들은 주인공이었던 거야. 바람둥이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없어.

● 장면2:기훈이 정부의 발톱을 깎아준다

바람♂=남자가 아내를 ‘편안’한 대상으로, 정부를 ‘긴장’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건 편견이야. 이 영화는 남자의 진심을 드러내. 아내에겐 잘 보이고 싶고, 정부에겐 상상 가능한 모든 행동을 극한까지 저지르고 싶지. 기훈은 아내에겐 콩나물국을 끓여주지만, 정부에겐 발톱을 깎아주잖아?

정숙♀=기훈은 “사랑해. 사랑해”하면서 섹스 하지만, 절대로 정부를 사랑하지 않아. 섹스가 끝나면 기훈이 담배부터 물잖아?

● 장면3:기훈이 임신한 아내의 배에 귀를 댄다

바람♂=아름다운 순간이야. 비록 아내와 정부가 동시에 기훈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남자는 이럴 땐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어 해. 양심이 발동하거든.

정숙♀=놀고 있네. 아내는 이미 기훈 모르게 여러 번 낙태했어. 낙태는 남자에 대한 가장 처절한 응징이요 복수야. 여자는 남자보다 강해. 임신을 통해 남자를 ‘복제’할 수도 있지만, 남자를 뱃속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어. 남자에게 임신은 ‘환상’일지 모르지만, 여자에겐 ‘현실’일 뿐이야.

● 장면4:기훈이 정부와 함께 자신의 자동차 트렁크에 갇힌다

바람♂=정부는 “우리가 죽은 채 발견돼도 세상은 우릴 동정할거야”라고 해. 하지만 세상은 애인과 숨진 채 발견된 유부남을 동정하지 않아. 기훈은 극한상황에서 “수현이(아내)가 기다려. 나 나가야 돼!”하고 울부짖지. 가식이 아니야. 죽음의 문턱에서 남자는 아내가 절실해져. 하지만 모르겠어. 바람피우는 모든 남자가 지옥 같은 트렁크에 들어가 기훈처럼 피범벅이 돼야 하는 걸까. 너무 단호하고 꽉 막힌 메시지(원죄와 그 대가) 탓에 영화가 무슨 성경책 같잖아. 의미 과잉이야. 세상은 안 그래.

정숙♀=여기서 수컷의 실체가 드러나. 정부는 끝까지 기훈 없이 못 산다고 하지만, 남자는 손길을 뿌리치며 “이 개년”하잖아? 여자로서 정부가 불쌍해. 기훈이 자길 사랑할 거라 믿었다니. 트렁크는 ‘자궁’이야. 바람피우는 놈들은 다 죽어야 해. 아니면 이런 끔찍한 경험을 통해 다시 태어나거나.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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