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인 두 형에게 늘 ‘우리 강아지’라고 불리며 애송이 취급을 당하는 막내 이반은 올해 열 살이다. 우리로 치자면 초등학교 4학년인 열 살은 어떤 나이일까.
엄마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죽은 사람들과 부상당한 군인들만 잔뜩 그려놓은 그림’을 ‘정말 괜찮은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벌거벗은 여자 그림들로만 가득 차 있는 전시실은 들어가기 싫어’하는 나이다. “엄마 곁에서 벗은 여자들을 보고 있기란 보통 거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니까.”
열 살은 그런 나이다. 아직 여자 친구는 없지만, 동화 속에 나오는 예쁜 공주 같은 여자에 대한 환상은 갖고 있다.
이반에 따르면, 어떤 여자가 공주인지 아닌지를 아는 좋은 방법은 그 여자의 발을 보는 것이다. 공주의 발은 특별히 예쁠 테니까. 왕자도 신데렐라를 결국 발을 통해 알아보지 않았던가!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반은 수업이 없는 수요일마다 친척인 모리세티 할머니에게 맡겨지게 된다. 모리세티 할머니는 발 관리사다. 이반은 심심하고 따분한 할머니의 조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지만, 마음을 고쳐먹는다. 발 관리 센터에서 공주를 만나면 되잖아!
발 관리센터에 간 첫날. 이반은 하마의 이빨도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드릴이며, 가위, 핀셋을 보면서 궁금해 진다. 과연 공주의 발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시련을 견뎌 낼 수 있을까. 그러나 예쁘게 보이기 위해 뾰족 구두를 신느라 흉한 몰골로 변해버린 여자들의 무시무시한 발들을 보면서 공주(여자)에 대한 이반의 상상은 여지없이 깨지게 된다.
할머니와 일하는 하루 동안 이반은 한 뼘쯤 성장한다. ‘여자’가 아니라 늘 ‘할머니’였던 모리세티 할머니 덕분에 이반은 여자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할머니는 이반의 생각과 달리 활기찼고, 섬세했고, 재미있었다. 뻔한 손님의 넋두리도 절대 지친 기색 없이 들어주는 매력 있는 분이었다.
이 책은 이성에 대해 막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한 소년이 여자에 대해 갖고 있던 허황된 환상을 유쾌하게 깨는 이야기다. 이반은 ‘유리구두가 어울리는 곱고 예쁜 발’ 대신 ‘현실 속에서 뛰어노는 건강한 발’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이반은 늘 선머슴 같던 여자 친구 이렌이 물집 잡힌 맨발로 열심히 축구공을 쫓아 뛰어가는 걸 보면서 생각한다.
“난 평생 이날 오후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공주만이 맨발로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걸.”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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