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1996년 정물을 소재로 한 개인전 이후 8년 만에 갖는 ‘떠도는 섬’ 전에는 10여년 동안 80여개 섬을 떠돌며 촬영한 한려수도와 전남 신안군, 인천 옹진군의 섬들을 비롯해 강화도 울릉도 완도 진도 제주도 등 풍경 50여점이 나온다.
그가 카메라 앵글로 잡은 작품에는 바닷바람을 타고 비상하는 갈매기, 해무(海霧)에 잠긴 섬, 섬으로 가는 길, 하얀 구름과 파도, 갯벌 속에서 조개와 하나 된 어부, 안개와 어둠으로 검게 물든 선창가, 출렁이는 배에서 올려다 본 검은 절벽, 젖은 햇빛과 마른 햇빛, 그리고 한쪽 어깨를 내려뜨린 채 수평선을 바라보는 젊은 여인의 뒷모습이 있다.
비 오는 날 아니면 흐린 날, 새벽과 해질 무렵, 배 위에서 혹은 높은 벼랑 끝, 물과 뭍의 경계지점에서 찍은 사진들에는 정적인 차분함과 동적인 역동성이 주는 긴장감이 서려 있다.
|
부산이 고향이고 어린시절 통영 앞바다 연화도에서 산 적이 있는 작가에게 섬은 추억의 공간이지만, 이번 작품들에선 섬을 이탈한 외부자로서 섬을 기록한 ‘거리두기’가 느껴진다.
얼핏 보면 고요한 섬과 바다 풍경 같지만, 바다 물결의 일렁거림과 한쪽으로 기울어진 수평선,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갈매기의 재빠른 움직임들에는 섬 출신 작가가 갖는 내면의 따뜻한 추억과 함께 이탈자로서 지니고 있는 차가운 시선도 겹쳐진다. 그리하여 풍경의 깊이뿐 아니라 인간의 심연까지도 표현된 듯하다.
그의 사진은 곧잘 수묵화에 비유된다. 사진이라는 차가운 장르에 체온을 싣기 위해 수작업으로 촬영한 대상을 흑백 인화지에 옮긴 후 스캔이라는 디지털작업을 거쳐 판화지나 한지에 잉크젯 프린터로 뽑는다. 디지털작업이라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톤의 조절과 화면의 크기를 정하는 일 외에는 아무런 인위적 수정이나 변형을 가하지 않기 때문에 수묵화의 농담이 두드러진다.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전시도록에서 그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그는 눈앞에 있는 것과 대결하지 않고 화해를 청한다. 그리하여 보이는 세계에 몸과 마음을 맡기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그리고 꿈을 꾸듯 그 외로움에 도취하는 것이다. 김영수의 사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경험했을 이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인간적인 어떤 시도도 자연의 질서 앞에서는 허망하다는 체념, 결국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포용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12∼3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포럼스페이스. 02-720-1020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